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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작성일 : 18-01-10 15:44
신학독서토론 2.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끝내면서
 글쓴이 : 김영균
조회 :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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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대화로 돌아가서....대화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대화의 바로 다음 장의 제목은 장애물과 방해꾼이다. 그리고 저자는 여러 장애물과 방해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질병, 심리적 장애, , 명성, 직업 등이 우리의 실제인간을 우리 등장인물 뒤로 감추는 데 사용되며 그로 인해 우리는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가 책을 쓴 시점부터 수십년이 더 지난 지금의 우리들에게 와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나는 본다. 장애물과 방해꾼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인간이 아예 퇴화해 버려서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어 버린거다. 즉 우리가 철저한 등장인물이 되어 버린거다.


 저자에 의하면 등장인물의 삶은 어떤 것인가? 기계적이고 반복적이다. 변화무쌍하게 요동치고 있는 우리의 내면을 감추고 늘 일정한 어떤 모습만을 드러내 보여준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현대의 삶에서 이처럼 기계적이고 반복적이며 너와 내가 다를 바 없이 비슷한 이 삶을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인가를. 내게는 가정과 교회가 대표적인 등장인물적인 공간으로 떠오른다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모범적으로 생각하는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아주 규칙적이고 일정한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다. 그래서 예측 가능하고 내 눈 안에 다 들어오는 사람. 일정한 시각에 일어나서.... 일정한 시각에 잠들고...늘 부인이 익숙한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고...사고를 치거나 부인의 심기를 크게 건들일 여지가 아예 없는 사람. 이런 남편이면 여성 분들의 입장에서 모범남편이다. 자녀는 또 어떤가? 말 잘 듣고 남처럼 행동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사고 안치는 자녀가 바람직한 자녀다. 부인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어찌 보면 가정은 서로의 등장인물됨을 철저하게 받아주는 공간이다. 진실한 대화는 각자의 바쁨에 밀려나고 대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서로를 너무나 잘 앎에 밀려난다. 그럴까?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녀를 정말 그렇게 잘 알고 있을까? 만일 가족들이 진짜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면...가족은 전혀 낯선 사람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등장인물로서만 변함없이 서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족의 익숙함과 편안함도 등장인물에서 기인되어 조성되고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통해 더욱 등장인물적인 사람으로 양성된다. 그런데 내가 가족 안에서 등장인물적으로 행동하면 결국 를 소외시키는 것이다. 가족은 또 가족  바깥의 세계를 소외시킨다. 바깥의 세계는 언제든지 등장인물의 페르소나를 쓰지 않고 거칠고 사교적이지 않은 민낯으로 나를 대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외부를 향한 나의 웃음은 나를 향해 뱉는 침을 사전에 차단하는 정략적, 등장인물적 웃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교회는 또 어떤가?

 예를 들어 주일 오후 1120분쯤 되면 전국의 수만교회에서 수만명의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대표기도를 드리고 있을거다. 그 기도내용은 어떨까? 80프로 이상 똑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거다. 같은 거, 비슷한 거, 규칙적인 거.... 등장인물적 요소의 특징이다.


 교회는 또한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룰이 그 어떤 집단보다 많은 곳이다. 그 룰을 따라야 하다 보니 교회에 오면 사람들의 표정도, 행동도 비슷해진다. 심지어 옷입는 것도 비슷하다. 다른 것, 튀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된다. 이 또한 저자의 논리에 의하면 몹시 등장인물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수십억명의 얼굴을 하나도 같게 만들지 않으시고 지구의 수십만종의 생명체들이 모두 각양각색의 다양함을 뽐내도록 세상을 창조하신, 무한히 다양한 창조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획일적인 것을 요구하실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 왜 교회는 획일적인 것을 좋아할까?

 가정은 물론 교회도 등장인물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적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 비슷한 것, 규칙적인 것, 틀 안에 있는 것..... 그래서 편하기도 하고 상대하기도 쉽고 관리하기도 쉬운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회는 종교적 룰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모든 활동들에 룰을 부여하고 그 룰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했다. 그 룰은 지금와서 보면 인간의 족쇄였다. 예수님이 인간을 억압하고 있던 종교적 족쇄에 저항하고 반발하고 부딪혔던 장면을 우리는 성경에서 얼마나 자주 볼 수 있는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적일수록 편하고 익숙하고 다루기 쉽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래서 그들은 룰을 만들어 그들을 등장인물적으로 만들어 갔다. 오늘날의 교회도 그런 속성을 적지 않게 닮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삶이 너무 등장인물에 편향되면 우리의 실제인간이 퇴화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 가정과 교회 마저 우리를 등장인물로서 부추겨가는 측면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대화가 등장인물적 대화에 그치고 실제인간적이고 교감을 만들어 내는 대화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고 가정과 교회를 실제인간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써야할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여전히 대화에 있다.

 교감을 만들어 내는 대화는 가장 실제인간적이고 실제인간의 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실제인간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사랑이 있어야할 것 같다. 저자에 의하면 사랑은 타자의 운명을 공유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타자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가족만 남았다. 우리의 실제인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족을 넘어 운명을 공유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실제인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등장인물적인 대화라도 많이 하는 수 밖에 없다.

 저자에 의하면 등장인물과 실제인간의 경계는 모호하며 등장인물의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교감을 나누는 대화로 발전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낯설게 지내던 어떤 사람과 한 끼 식사를 같이 하거나 짧은 여행을 같이 한 후에 마치 오랜 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 적이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실제인간의 효과다. 등장인물로서 시작한 대화 속에, 여행 속에.. 실제인간으로 변모하는 어떤 순간이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그런 순간을 맞이한 지 모른다. 그처럼 분명히 있지만, 추적할 수 없는 게 실제인간의 영역이다. 이 세계에서 기원한 실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외부세계에서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선물이다.

 

 최종 정리를 해본다.

 인간에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알 수 없고 과학으로도 추적하거나 밝혀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실제인간의 영역, 영적영역이다. 저자는 실제인간을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표현한다. 대화는 가장 중요한 실제인간의 영역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사람 간의 대화도 영적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화는 늘 등장인물적인 대화로 시작하지만 어느새 교감을 만들어 내는 실제인간의 대화, 영적대화로 바뀐다. 따라서 대화를 나누는 속에 실제인간을, 교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등장인물적인 대화를 많이 시도하는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시작할 때는 등장인물로서 기도하고 묵상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을 실제인간으로서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일단 기도를 많이 하는 수 밖에 없다. 등장인물로서의 기도를 시작해야 어느 순간 실제인간의 기도로 변해 있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현대의 삶은 지나치게 등장인물적으로 편향되어 간다는데 문제가 있다..실제인간이 퇴화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나?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미래에 고도의 지능과 기능을 갖춘 로봇의 삶과 비슷하게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실제인간을 지켜야한다. 어떻게? 실제인간적인 요소를 자주 활성화시킴에 의해서.

 그렇다면 가장 실제인간적인 요소는 뭐라구요? 대화!

 어떻게 하면 실제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구요? 등장인물적인 대화를 자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언덕교우 여러분들! 자주 만나서 대화 많이합시다!!!


강성희 18-01-13 21:14
 
우와~ 감탄사를 부르는 이 지성이라니! 존경스럽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책도 읽지 않고 어원적 느낌만 가지고 헛소리를 해대서 죄송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지라도 말아야 할텐데 말이지요^^
등장 인물적 대화를 통해 실제 인물의 대화로 들어가기, 그리고 회복하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수긍이 가는 면이 있으나 인간 관계에서는 참 쉽지 않을 일 같습니다. 대화가 본격 궤도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만나게 되는 감정의 벽들, 대화 시작점에서의 모습이 등장 인물 vs 실제 인간  또는 실제 인간 vs 등장 인물일 경우 여러 가지 엇박자로 인한 공허함에 중도 포기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턴하게 되겠죠..(그러기 쉽겠죠..)
복잡한 성격의 저는 무수히 반복된 이 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등장 인물이 되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화된 나! 탈피를 위해 대화를 많이 하자!!!
희망이 불끈 솟아야 하는데 지레 체념부터 되는 것은 왜일까요? 타인과의 여러 가지 힘든 과정을 인내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대화에만 집중하며 조용히, 단절되어, 요즘 말로 스따(스스로 왕따)로 지내고 싶은 이 생각은 신앙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저 처세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처 주기도 받기도 쉬운 세상, 버선 뒤집 듯 있는 그대로의 속내를 보이기도 어렵지만, 보여준들 곡해 받기 십상인 현대의 인간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한 궁여지책은 아닐런지...
이렇게 유려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주신 요점 정리를 읽고도 이해를 못 해 여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이럴 땐 헷소리라고 해야 입에 더 잘 붙고 더 잘 와닿을 거 같네요~하하^^ (이번에 절실히 깨달은 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귀를 정말 못 알아듣는구나~~ㅠㅠ)
더없이 좋은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 주신 집사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 드립니다!
김영균 18-01-14 22:15
 
강성희 집사님은 원래 "남'은 꼭대기까지 높여주고 자신은 제일 아래까지 낮추시는 분이니 칭찬의 말씀은 패스하구요, 긴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신 것 같아 저야말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저도 책을 100% 이해한게 아니라서 이해 못하는 내용은 다 빼뜨리고 그냥 제 식으로 이해한 바를 요약한겁니다.
스따~? 처음 듣는 용어인데 공감이 가는 표현이네요. 저는 스따 정도가 아니고 언덕교회에서 왕따, 조금 좋게 표현하면 영원한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으로 올해면 10년을 채우게 되네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저를 친하게 대해주는 분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고 관계에 끊임없는 결핍을 느끼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쨋든  저 역시 관계에서 문제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고, 그래서 강성희 집사님의 마음을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르다면 저는 스스로 생각에 사람들에게 꽤나 오픈된 마음을 갖고 있는 편인데도 결과적으로 그게 쉽지 않더라는....
따뜻하고 호의적인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게 요즈음은 역효과를 낼수도 있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거꾸로 좀 까칠해져 볼까 생각도 했었다는....ㅋㅋ
언덕교회 한 분 한 분이 다 너무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나 자신, 그 동안 내가 살아온 모든 삶, 결과적으로 내가 풍기는 어떤 냄새 같은 것에게서 찾고 있습니다(진심)
이렇게 주절주절 쓰는 이유는 그냥 하나. 강집사님이나 저나 또 다른 누군가도 보편적으로 교회와 교우들을 좋아하지만 가슴 한 구석 텅빈 느낌, 또는 관계에 대한 혐오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갖고 있을수도 있다는 것을 강집사님께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보기에는 강집사님은 본인만 (스스로의 표현대로)스따 안시키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분인걸로 느껴집니다. 어쨋든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서로서로 좀 위안이 되잖아요. 그 텅 빈 느낌을 그냥 내버려 두거나 하나님으로 채우거나 다른 거로 채우려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폴 트루니에의 조언처럼 사람으로, 속을 터 놓는 진정한 대화로 그 가슴을 채우고 싶네요. 잘할 수 있을지, 잘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