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 HOME
  • LOGIN
  • JOIN
  • SITEMAP

게시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작성일 : 18-09-07 07:09
요한복음을 읽고나서
 글쓴이 : 김영균
조회 : 122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

요한복음을 읽고나서....

 솔직히 처음에는 많이 의아하고 당황스러웠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예수도 성령도 아니고 뚱딴지 같이 말씀이 하나님이란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3위일체가 아니고 4위일체라도 된단 말인가?

요한복음을 계속 읽어가며 전에 알던 얕은 지식들과 상상력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그 궁금증은 풀렸다.

요한복음이 쓰여진 때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한 이원론과 관념론이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사상으로 뿌리내리고 있던 때였다. 이데아는 그들에게 절대적이고 유일하며 만물의 본질이자 근원인 관념의 신이었다. 곧 절대자였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헬라철학과 문화에 능통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무지하게 약고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예수를 헬라 사람들(더 정확히 말하면 헬라문화에 젖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뭐라고 소개해야할까?

요한복음의 저자는 정말 지혜로운 답을 찾았다. 이데아가 무엇인가? 만물의 근원이라지만 인간으로선 관념 속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신이었기에 100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100의 다른 답을 하기 마련이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틈새를 파고 들었다. 우선 이데아말씀’(로고스)이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로고스는 헬라인들에게는 이름만 다른 같은 관념의 신으로 여겨져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로고스든 이데아든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비유할 수 있는 만물의 본질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도대체 뭐냐는 것.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는 것.


요한은 설득력있는 답을 찾아냈다. 로고스가 육신을 입고 인간세상에 왔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요한복음 1: 14.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데아 또는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오셨다. 그게 예수다. 이제 우리는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를 만질 수도 있다. 너희들이 관념 속에 상상하던 로고스는 틀렸다. 예수가 진짜 로고스다

이렇게 말하면 끝이었다. 실체에 굶주리던 그들, 상상 속에서만 헤매이던 그들은 로고스가 육신이라는 실체로 이 땅에 왔다는 말에 솔깃했을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 :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저자가 왜 독생하신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는지도 주목해볼 일이다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파생된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곧 헬라인들의 개념에서는 로고스 자신 임을 강조하려고 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를 설명하기 위해 구구절절이 그의 계보를 설명하고 출생지를 얘기하고 성장과정을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동네마다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구석구석 이어진 포장도로는 이미 헬라인들이 깔아놨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데아와 로고스가 예수라고 하면 그 소식은 삽시간에 헬레니즘 세계로 퍼질 것이었다.

 

이외에 요한복음을 대표하는 몇 가지 사건이나 예수의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의 것들이 포함될 것 같다

 

요한복음 3 ; 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 말씀에서도 또한 헬라철학의 기존 개념을 이용해 그들을 파고들려는 요한복음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육과 영을 구별한다. 헬라인들에게는 반드시 존재를 이원론적으로 이해시켜야 한다더 정확히 말하면 육과 영의 구별은 그들에게 선행하던 개념이었다. 헬라인들에게 육체는 저급하고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영혼으로만 하늘의 일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이성을 영혼의 활동으로 보았다. 그래서 엄청난 이성의 사유를 쌓아야만 하늘의 이데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사실은 늘 이성의 한계에 부딪혔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 사실 또한 잘 간파하고 파고들 틈새를 찾아냈다


이성으로는 하늘의 세계를 알 수 없다. 하늘의 일은 하늘의 영’,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육체는 물의 세례를 통해서 거듭난다. 그렇지만 육은 육이다. 우리의 영은 별도로 성령의 세례를 받아서 

거듭나야한다. 물 세례와 성령의 세계를 둘 다 받아야지만 땅과 하늘의 일을 다 알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요한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요한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와는 다르다. 공관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주변부 사람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천국이라면 요한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지적인 갈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성의 한계를 넘은 영적 깨달음이 주어지는 나라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복음 저자가 얼마나 헬라철학을 잘 활용하고 있으며 기존의 것들을 엮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내는 위대한 사상가인지를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수는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하늘과 땅을 잇는다.

성령은 우리의 영을 깨어나게 하여 땅과 하늘을 잇는다.>

땅과 하늘의 이원론적 분리 안에 막혀 지적 탈출구가 필요했던 그들에게는 땅과 하늘을 이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절실했다. 그들의 철학은 이 세상과 하늘 위의 저 세계를 함께 탐구하는 종교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요한은 예수를 내세워 하늘에서 땅을 잇고 우리 육신 안에 거주하는 성령을 내세워 땅에서 하늘을 이었다하나도 아니고 둘이 상호 교차하고 시너지를 내며 하늘과 땅을 잇는다는 이론! 로고스가 육화된 존재인 예수를 믿으면 성령도 동시에 받게 되어 하늘의 일을 알 수 있는 영이 깨어난다는 메시지는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것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주장에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 : 12~13)

 

요한복음 저자의 논리는 계속 이어진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 : 15~16)

예수를 믿으면 거듭난다. 물로 육체만 아니고, 성령으로 영도 거듭낟다. 거듭난 존재만 하늘의 일을 알 수 있다거듭난다는 것은 태초부터 있는 영원한 만물의 실체 로고스와 연결되는 새로운 생명, 영생을 얻게된다는 뜻이다그 생명을 못 얻으면 너희가 생각하듯이 육체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림자로 끝난다. 하지만 예수를 믿으면 로고스로부터 주어진 영원 실체의 생명을 이식받을 수 있다. 그림자가 아니라 진짜 생명이 될 수 있다.


요한복음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깨달음의 나라였듯이 저자가 말하는 영생은 생명의 연장을 말하기 보다는 훨씬 우수한 새로운 생명을 이식 받는 것을 말했다는 것을 이 쯤에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예수를 믿어 얻게된 새로운 생명에는 하늘의 영이 거한다. 특히 그 영은 지혜의 영이다. 그래서 그 전에 밝히 보고 알 수 없던 것들을 보고 알게 된다. 즉 요한복음 저자가 강조하는 새로운 생명, 영생의 특징은 새로운 지혜를 얻게 하는 인식의 창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한다.

 

3 : 34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요 17 : 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라고 하지 않고 영생을 보지 못하고라고 한 말씀에 주목해 보자. 저자가 말하는 영생은 죽지 않는 생명이라기 보다는 로고스를 보고 깨달을 수 있는, 하늘로부터 온 새 생명 임을 알 수 있다. 더 직접적으로 17장 3절은 영생은 '아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가 아들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아들에 관한 교리를 믿는다는 것이 아닌 것쯤은 짐작할 때가 되었다.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요한에게 헬라인들이 갖고있던 세계관의 대폭적인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곧 이성이 영혼의 활동이며 하늘의 일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믿던 헬라인들에게 하늘의 일은 하늘에서 보냄을 받아 온 분만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예수가 바로 그 분이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어 하늘의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영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성만으로는 안되고 로고스의 육화인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는 가리워진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라고 논리를 펼친 것이다. (17 : 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곧 헬라철학에 맞서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것이고 그 세계관의 중심에 예수가 있음으로 사람들은 이제 그 둘 중에 하나를 믿고 택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즉 요한복음이 말하는 믿음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하여 두 거대한 세계관 중에 하나를 믿고 택하는 차원의 믿음이지 예수에 대해서 ABC를 믿는 믿음 이상의 것이라고 보여진다. 어찌보면 헬라인들에게는 예수에 앞서 진리가 중요했던 것이고 그 진리가 예수라는 포교내용 때문에 예수가 그들에게 의미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요한복음에 '진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세어보면 요한복음 저자가 '진리'를 미끼로 헬라문화에 젖은 이방 유대인들을 예수께로 데려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마무리하자면 오늘의 나를 보고 우리를 보면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논리가 꼭 맞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늘의 일은 커녕 땅의 일도 잘 모르니까.... 


어쨋든 복음은 누구에게 전해지느냐에 따라 다른 메시지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보여준다.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성경에 계시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라는게 복음이고

누가복음에서는 소외된 주변부의 인생들의 친구로 예수께서 찾아오셨다는 게 복음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관념의 신에 사로잡혀 실체에 굶주려있던 헬라문화권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생명의 신'으로 오신 예수를 복음으로 내세운다. 이처럽 복음은 스펙트럼이 넓다. 제발 틀에 가둔 교리를 복음이라고 우기지는 마시기를....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말씀에 의거해서, 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성령을 아는 우리가 더 낫다고 교만해질 수 있다. 하지만 헬레니즘의 시대에 요한복음의 저자는 헬라철학의 틈새를 궤뚫어볼 만큼 그 철학을 잘 알고 사유가 깊은 분이었다. 그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도 세상의 학문과 문화를 알아야 뭐라고 그들에게 예수를 소개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개념으로, 그들이 닦아 놓은 길로 접어 들어가 갈릴리 시골 동네 예수를 온 세상에 퍼뜨린 요한복음 저자와 바울처럼 우리도....


 요한복음 1.2.3장이 요한복음 전체의 개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요한복음 독서 후기를 여기서 마친다.

 

 


배상필 18-09-07 09:49
 
집사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

갑자기 요한복음의 저자가 누구일까 궁금해지네요. 당시 헬라 철학을 꿰고 있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하고, 관련된 문서들도 많이 읽고 했어야 하는데 갈릴리의 어부였던 요한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 헬라어를 읽고 쓸 수 있었던 사람이 3% 정도 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요한복음의 저자가 경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인지 기대감을 가지고 요한복음을 계속 봐야 겠습니다 ^^
손종칠 18-09-14 11:47
 
깊은 통찰이네요... 집사님의 치열한 탐구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땅과 하늘의 이원론적 분리 안에 막혀 지적 탈출구가 필요했던 그들에게는 땅과 하늘을 이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절실했다. 그들의 철학은 이 세상과 하늘 위의 저 세계를 함께 탐구하는 종교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요한은 ‘예수’를 내세워 하늘에서 땅을 잇고 우리 육신 안에 거주하는 ‘성령’을 내세워 땅에서 하늘을 이었다..."
김영균 18-09-15 10:21
 
오랫만에 나타난 손집사님!
저 손집사님 진심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좋은 말씀까지 듣다니!ㅋㅋ
앞으로 숨긴 내공 좀 펼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