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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작성일 : 18-09-14 20:56
종교(신앙)이란 무엇인가?
 글쓴이 : 김영균
조회 :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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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더듬어 찾아 발견하는 하나님

제게는 참 마음 깊이 와닿는 표현입니다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싱싱하게 빛나는 풀잎에서... 

매일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가을 하늘에서... 

저는 하나님을 더듬어 만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수록 하나님을 모르는 티를 내는 것 밖에 안 될 겁니다

우리가 사는 차원의  개념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하면 할수록 우리는 미궁에 빠져들게 되며,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을 명백히 표현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부조리한 신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완전한 화가는 완전한 그림을 그립니다

완벽한 도공은 완벽한 도자기를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 논리 상의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화가란 무엇입니까

완벽한 그림이란 또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논리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다는 개념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전지전능하시다는 개념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신 분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정의하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부조리의 근원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모순 많은 세상을 창조하셨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화가의 숨결을 더듬듯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서 향유하고 그 아름다움을 창조한 화가를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 종교의 의미는 그것입니다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하는 것

 

구약시대에는 무서운 신, 벌 주는 신을 상상했습니다. 노아와 바벨탑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만 한다면 인간을 벌하지 않고 보호해주는 신을 상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만 사랑하는 편애의 하나님이란 인식적 한계도 있죠

 

그 다음에 사람들은  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신을 상상했습니다

잘 보면 인간이 신에 대해 갖는 개념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신에 대한 개념이 진보할수록 인간사회도 더 좋은 쪽으로 진보합니다. 그렇다면 법을 잘 지키면 인간사회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법은 인간 사회에 너무나 유익하지만 기득권층의 보호와 이익에 더 치우친 면이 있습니다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법의 그늘에 위치하며 소외받게 됩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준법의 신을 넘어 법의 그늘에 있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사랑의 신을 상상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아울러 멀리 하늘에 있는 신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거주하는 신을 상상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신 개념에 대한 인간 이해의 진보

좋은 신에 대한 인간 상상의 진보

이것이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성경의 스토리로 제게는 보입니다


상상은 더듬는 것입니다

유추하여 자기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논리로 정의하여 또렷하게 남에게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신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의 문제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좋은 인간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좋은 신을 그려내고 상상하는 것이 의미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제게 종교의 의미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좋은 신을 상상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인간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헤아리는 지적 통찰력을 키워나가야합니다. 내 안에 거주하는 아름다운 신을 더 깊이 느끼려면 늘 나의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관리하여 내 마음과 신의 마음 사이에 거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 신은 상상 속의 존재로 끝나지 않고 내 안에 실체가 되어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상이, '바로 나'를 신에 가까운 실체로 만들어 갑니다. 나를 보면 신을 보는 것 같게 됩니다. 그걸 가장 먼저 깨닫고 자기 안에 이루신 분이 제게는 '예수'란 분이십니다

 

완전한 신, 설명할 수 있는 신을 상정해 놓고 종교의 교리를 만들어 나가면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하여 논리상의 허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바보나 변덕장이나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게 됩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신을 완전하다 정의하고 거기서부터 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완전한 신이 만든 세상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신은 그 오류를 인간의 탓으로 돌리며 그 오류를 보완하려 쩔쩔매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시도해보지만 늘 사람들 때문에 실패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은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 그를 믿으면 구원하고 그를 안 믿으면 모두 심판해 버리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교리는 제게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노력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각도로 성경을 보면 우리는 신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 진보해가는 과정을 발견하고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 상상이 실체로 변한 것을 봅니다. 마치 큰 바위 얼굴의 이야기처럼요

우리 또한 예수님을 스승이자 모델로 더 아름다운 신을 상상할 수 있기 위해,,, 

우리 시대의 많은 문제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더 좋은 신을  상상할 수 있기 위해... 

내 자신이 더 아름다운 사람, 좋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으로 매일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제가 더듬어 만난 하나님, 더듬어 만난 종교의 의미입니다

이것 말고 또 얻어야하는 것이 있을까요?



김영균 18-09-15 10:00
 
저의 글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만 존재의 차원이 너무 달라서 우리가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불가능하다는 거죠. 신은 우리의 개념 안에 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죠.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리의 개념과 언어로 상상해보는 것 뿐이죠.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서 기독교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했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우리에게는 인간의 개념과 언어로 변환되어 이해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선지자 개미가 개미의 언어로 다른 개미에게 사람에 대해 설명하면 개미는 과연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모세가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대답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였죠. i am that i am 이것은 인간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답입니다. 이 대답 후에 우리는 신을 이해하기보다는 다시 신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죠.
김영균 18-09-16 08:30
 
기왕 칼을 빼든 김에....

종교는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하고 선포하고 믿는 것이라는 저의 논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정확히 그 표본을 보여주신 걸로 제게는 보입니다. 먼저 아래의 말씀들을 읽어보시자구요.

 구하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 6:7~11
현실에서는 간절히 구함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현실의 하나님이 아닌 "가장 좋은 하나님"을 선포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 29~31
현실에서는 참새보다도 못하게 태어나 참새보다도 불쌍하게 살다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에수님은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고 계실만큼 우리를 다 알고 보호하시는 가장 좋은 하나님을 선포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라고 걱정하지 말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곳간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눅 12 :22~
현실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두를 먹이는 '가장 좋은 하나님'을 선포하십니다.

왜?
내 생각에 예수님은 아신 것이다.
종교는 현실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좋은 하나님에 대해서 상상하고 선포하고 믿는 것이라는 것을...

왜?
그런 속에 우리가 '가장 좋은 하나님'의 '좋은 뜻'을 따라 살게되니까.

그리고 우스개 소리를 더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기왕이면 하나님을 가장 좋은 분으로 봐주고 상상한 사람이 하나님도 예쁘지 않겠는가?

지금에서 나는 왜 성경에 그렇게 많은 허황된 기적들이 진실처럼 담겨있는지 이해가 된다.
예수의 제자이기도 한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들이 겪었던 현실의 상황과 가장 좋은 하나님을 결합해서, 사실적 역사서보다는 종교 문학으로서 복음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

굶주린 무리들에게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여주시는 '좋은 하나님',
병자를 만나면 치유해주시는 '좋은 하나님', 
앉은뱅이를 보면 일으켜주시는 '좋은 하나님',
죽은 자도 살려내실 수 있는 '좋은 하나님'......
예수님에게 배운대로 그들은 사실과 현실의 하나님이 아닌, 우리를 긂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헐벗게 내버려두지 않으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고 계신 '가장 좋은 하나님'에 대하여 
상상하고 선포하고 믿기로 한 것이다.

상상 속의 하나님을 어떻게 믿냐고?
하나님이 상상 속에 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실재로는 없다는 뜻 아니냐고?
아니지. 하나님은 실재하시지. 다만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없을 뿐이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로써,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해보면 그래도 그게 하나님에 가장 까깝지 않을까? 어차피 100프로를 맞힐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상상한 '가장 좋은 신‘을 하나님에 가장 가까운 신으로 믿고 선포할 수 있는거지.

그러고보니 나도 이제  다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해체헀다가 다시 세운 '믿음‘을.

남들처럼 기도하고 고백하고 간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살의 언어가 아닌 늘 가장 좋은 하나님에 대해 상상하고 믿고 선포하는 종교의 언어로...
배상필 18-09-16 17:55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종교란 인간에게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재하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낸 다양한 방식에 인간의 상상력이 결합되고, 이것이 사회와 문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변형되면서 오늘의 기독교가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도화된 종교인 기독교 안에서 또는 밖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아가고, 알아가고, 그 뜻을 실천하면서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