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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작성일 : 18-10-03 15:19
'믿음'에 대한 딴지
 글쓴이 : 김영균
조회 : 74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
무언가에 작정하고 딴지를 건다는 것은 저 자신에게도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허약한 저의 두 다리로는 견디기 힘든 중압감을 버텨내는 일이었죠. 아무도 내게 무어라 하지 않았지만, 내가 지금 열심을 내어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를 분간하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저에게는 그런 시점입니다. 아내도 저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저의 주장보다는 단지 남편인 저를 지지하는 입장에 있긴 하지만, 교회에 대해서도, 저에 대해서도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좀 쉬기 전에 제가 왜 이렇게 '믿음'에 딴지를 걸었는지.... 
(매일 성경읽기 댓글에서 제가 엄청 딴지를 걸었거든요. 특히 바울에 대해서 ㅎ)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매개물을 늘 필요로 합니다. 바울 이전에는 율법이  그 매개물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날수 없고 율법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보니 서서히 율법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됩니다. 율법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가진 것이고 율법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점수를 매기기 시작합니다. 너는 율법을 잘 지켰으니 100점. 너는 하나를 안지켰으니 90점. 이제 사람들은 율법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고  율법에 압도 당하고 율법을 하나님으로 믿기 시작하고 급기야 진짜 하나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율법으로 늘 하나님을 내세우는 자들에 대해 왜 경기같은 것을 느끼셨는지 이해할만한 대목입니다 

바울은 율법 대신에 믿음을 매개물로 내세웠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우리는 믿음이라는 매개물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크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믿음이 큰 사람은 믿음이 작은 사람에게 믿음이 커지는 기술과 경험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행실을 떠나서 믿음 좋은 사람이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됩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 받을 수 있으니까요. 바울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잊어버라고 믿음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이 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회가 하나님이라고 규정한 믿음세트를 의심않고 더 많이 믿을 수 있을까를 가르치고 논의합니다. 교회의 모든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믿음을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물론 사람들이 이런 성향으로 치우치게 돨 것을 우려하여 약간의 보완장치를 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의 보편적인 실상을 보면 그 보완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아니라 믿음을 전파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는게 먼저 믿은 우리들의 목표이자 삶의 사명입니다. 믿음을 충족시켜야합니다. 믿음은 믿음으로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해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합니다. 성경과 기도는 우리에게 변화와 죽음과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봉사하는 제 2의 매개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경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믿음을 섬깁니다. 믿음은 정말 좋은 신입니다. 우리 삶이 변하지 않아도, 우리가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하나도 내어주지 않고 그대로 지키고도,  믿음에 대한 충성만 흔들리지 않으면 믿음이라는 신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줍니다. 그렇게 좋은 신을 믿게된 것은 은혜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신이 어디 또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이름의 신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떠날까봐 두려워할 뿐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저는 도대체 누구냐고요? 
저는 믿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찾아내실까봐  떨고 았는 아담입니다.  나무 아래 숨어 하나님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런 저의 눈에 사람들이 믿음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아닌데 사람들이 믿음에 절을 하고 맏음을 숭배하고 있는 것을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그동안 저로 인해 불편했던 교우들이 있으시겠지만 저도 스스로의 중압감 때문에 못지 않게 힘들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전히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여 숨어있는 사람으로서 당분간 더 언덕교회에 남을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사람은 늘 그 쫒아오는 대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게 마련이지요. 하나님이 저를 쫒아와 자기 삽자가의 길 앞으로 무릎을 꿇릴까봐 저는 발은 세상에 담그고도 늘 그 분을 많이 살피며 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으면서 본 하나님이 아니라 살피면서 본 하나님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것을 지지해준 몇몇 교우분들과, 생각이 다름에도 다양성에 대한 포용으로 저를 인내해주신 언덕교우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영균 18-10-04 23:49
 
모 장로님한테 혼났습니다.
당분간 더 언덕교회에 남겠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도 한동안은 열정을 갖고 앞에 나서서 뛰지 못하고 하나님을 피해 숨어있는 사람처럼  (말만 앞서며)언덕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말만 앞서고 혼자만 뭐 좀 아는체하면서 행동은 뒷전인 저를 교우들이 앞으로도 용납해달라는 뜻으로 쓴 글이니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배상필 18-10-05 12:58
 
모 장로님이 안 모 장로님이신가요? ㅎㅎ 김영균 집사님은 인간의 본질과 존재 문제에 대해 생각이 깊으시고, 그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은사가 있으신 것 같아요. 그 글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아쉽네요. 성경 공부 게시판이 아니더라도 가끔 생각하시는 것 글로 올려주시면 좋겠어요. 성경 공부 게시판으로의 컴백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 앞서는 말 계속 부탁드립니다. 그 말(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되고,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