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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작성일 : 18-11-30 07:56
제 멋대로 신학 마지막 글
 글쓴이 : 김영균
조회 : 69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
'제 멋대로 신학' 마지막 이야기는 다시 예수님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작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복음서를 읽어본 느낌에 의하면 예수는 누구인가?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저도 개인적으로 그 부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진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인데 인간은 인간이되 보통사람으로 오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혁명가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오신 것이죠. 칼로도 십자가로도 꺽을 수 없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신.....
예수님은 도대체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일반 기독교인들이 아는 바와 다르게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목적론에 대해 언급하신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서 멸망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 자신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죽음의 목적론은 바울의 이야기이지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반드시 택해야 한다기 보다는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시고 예고하셨는데 이 죽음을 자신이 정면도전한 당시의 종교적 기득권 세력에 의한 응징의 결과로 보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후 수천년에 걸쳐 사람들의 구세주가 될 뜻이 있었던 분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복음서에서 읽히는 그 분의 뜨거운 혁명의 심장은 수천년 후가 아니라 수십년 내로 이 불의한 세상의 끝을 보고 정의와 사랑이 강처럼 흐르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내야 성이 찰 것 같아 보이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의 임박한 도래를 믿고 그것을 위하여 삶을 바친 분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비유하자면 예수님이 '새로운 세상을 위한 혁명의 결기'로 가득한 테이블에 앉아서 나눈 얘기들이 아니라 회의를 끝내고 가벼운 티타임을 가지며 나눈 덕담들로 '복음'을 재구성하여 편집한 것으로 보입니다.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결단들은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사전에 버리고 목숨까지도 언제든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할 정도로 섬뜩한데 우리의 복음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값없이 얻는 은혜로 변환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면 만사를 멈추고 그들의 필요를 만나주셨지만 좀 먹고 살만한 사람들, 머리 속에 뭐 좀 들었다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면 OX단 둘의 선택지 밖에 없는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독설을 퍼부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먼저 맺고 오라고 근처에도 못오게 하셨죠. 

나에게는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단호한 결단을 촉구하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를 자신이 없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저도 예수님을 쫒을 수는 없다는거죠.
예수님이 혁명가의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웬만한 놀이에는 재미를 못느끼고 아드레날린이 무한 분비되는 리스키한 스포츠에서만 재미를 느끼는 강심장으로 태어났다는 얘기죠. 예를들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한참을 맨몸으로 활강하는 스카이다이빙 같은거요.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고 못하고는 노력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타고난 강심장이 있냐 없냐의 차이죠., 마찬가지로 박해와 테러의 공포가 항존하는 혁명가의 삶을 끄떡없이 사는 것도 타고난 심장과 기질이 없다면 노력으로 쉽게 따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저는 예수님은 신이자 인간이라서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보지 않아요. 이 땅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셨지만 거룩하고 원대한 목표를 갖고 거기에 온전히 몰입해 사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보다 더 당기는 특수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보는 거죠. 이건 범인인 저에게는 노력의 문제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기질의 문제이므로 목숨을 언제든 내놓을 각오로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에는 yes로 선뜻 대답할 수 없다는거죠.

그렇다면 저도 지금은 매일 뭐 좀 아는체 글도 끄적이고 먹고살만하기도 한 처지인데 예수님이 내미는 OX 단 둘의 선택지 앞에서 O를 택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거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복음서로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격은 사전에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이 선행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데 말이죠.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결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무엇을 얻기 위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평안'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예수님은 기본적으로 큰 탈없이 먹고살만한 사람들이 '평안'까지 더 얻고 싶어 예수님께 다가오면 호통을 치며 쫒아낼 것 같은 분위기로 복음서에서 읽힌다는 것이죠. 

이렇게 말이죠.
"예끼!이 염치없는 사람들아. 그 정도 잘 먹고 잘 살면 됐지 뭘 더 얻으러 나한테 왔냐고. 내가 주는 평안은 나를 쫒으며 박해를 받을 때 맛볼 수 있는 평안이지 멀쩡히 사는 사람들은 맛볼 수 없는 평안이다. 그게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소리치시면서....

저는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오신다면 같은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까지 언제든 내놓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 아니라면 자신한테 무엇을 받기도 바라지 말고 내 옆에 얼씬대지도 말라고.

교우분들은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제가 읽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입니다. 이와 분위기가 다른 예수님을 저는 복음서에서 거의 발견할 수 없어요. 

저는 어설픈 자들을 물리치시는 예수님의 방법이 옳을 뿐 만 아니라 아직 예수를 쫒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가르침이 그 안에 담겨있다 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얘기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왜 그러지 못하고 더 무엇을 얻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거죠? 많은 것을 가지고도 더 많은 것을 늘 갈구하는 부자처럼 왜 마음이 부요하냐는거죠. 마음이 가난히면 예수님한테 뭘 더 얻지 않고도 지금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거라고 말씀하는 뜻으로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진 자에 대한 편견과 거절과 외면이 아니라 가르침의 일침인거죠.

"네 마음이 부요하여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 뿐  아니라 다른 누가 또 뭘 더 준다고 하더라도 너는 여전히 진정으로 채워지거나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이 말씀에 동의합니다. 예수님께 평안을 구하지 않지만 지금의 상태에 충분히 만족합니다. 오해마십시오. 제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뭘 많이 가졌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거저거 다 정리하면  20년 다 되어가는 아파트 한채만 겨우 빚없이 남습니다. 25년 간 사업한 결과치곤 참 부끄러운 성적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한 채만 빚없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저는 이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도 많이 행복합니다. 행복이 아파트에 있지는 않겠죠. 아파트로 대변되는 내 주변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여유로 인하여 저는 많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는 먹고살만한 처지에 있는.사람들에게 너무 예수의 말씀을 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억압을 벗어나 어깨를 펴고 많이 행복을 누리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여유와 겸허한 행복감이 얼굴에 넘쳐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다면, 그래서 상대의 작은 무례와 불친절에마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여유롭고 따뜻하게 반응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온도가 몇 도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지금 가진 것으로 행복할 수 있는 비법! 저는 그것을, 무엇을 더 얻기 위해서 내게 나아오냐고 호통치는 예수의 말씀에서 배웠습니다. 어차피 날 쫒아오지 못할 거라면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주변사람들 의식해서 더 이상 뭘 바라지 않는 염치라도 갖고 살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쫒아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저를 숫자 채우려고 받아들이지 않고 일상의 삶으로 되돌려 보내시며 지금의 보통의 삶에서 소소한 가치와 행복을 찾아 사람들과 나누며 살라고 예수님은 오늘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쫒아오지 못할거면서 마음의 짐으로 인해 마음이 무겁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저는 혁명가 예수의 동지는 될수 없지만 그 분과 늘 함께하는 제자도 될수 없지만, 예수님과 눈 마주치지 않고 살짝살짝 피해다니며 먼 발치에서 그 분 곁을 맴돌다보면 어쩌다 그 상에서 부스러기라도 하나 떨어질까하여, 얌체같이 공짜로 그 말씀 주워 먹고 싶어 여전히 예수 곁을 맴돌며 삽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무엇을 더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있는 제 은혜가 제게 넘치게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