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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작성일 : 18-12-27 12:15
잠시 쉬고자 합니다 2.
 글쓴이 : 김영균
조회 : 381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

우리 안의 가장 힘없고 돈없고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 나와 똑같이 나에 의해서도, 타인에 의해서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거요. 곧 타인이 누구냐고 올바로 정의하는 것을 하나님이 누구냐고 올바로 정의하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중시하는 것이 성서의 사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기준점을 잃어버리면 거기서부터 출발한 타인의 지위도 같이 흔들리고 왜곡돼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더러 자신을 공경하고 자신의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고 자기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장! 인간을 위해서.....

 

이와 같은 근거로 예수님의 마음은 이 세상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신적인 힘으로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힘없는 인간의 손들이 모여 세상을 고치자는 것으로 우리에게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세계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들, 보이지 않게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고 개인의 선한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대한 악의 실체는 개인의 믿음과 경건으로 상대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힘 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믿음이라는 담을 철거하고 다른 종교와 세상의 좋은 무브먼트와 손을 잡고 연대하며 힘을 키워 나아가야하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의 믿음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사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믿음이라면 복음이기는 커녕 철거대상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사랑과 바울의 믿음이 당시에 모든 인간에게 잃어버린 제 자리를 찾아주고자 새로이 높이 든 혁명의 기치와 같은 거였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받아야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지금 온 인류를 종말로 몰고가는 대부분의 큰 문제들은 전과 달리 전지구적 문제들입니다. 자연계에서는 기후변화가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고 우리가 숨쉬는 공기의 질은 방독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수준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구 공동체에는 건전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변질되면서 소수의 부자들이 부를 독점하여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패자의 반열에 들지 않기 위해 부자들과 기득권들이 남겨 놓은 한정된 기회들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핵무기의 위협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런 세계를 향해 교회 안으로,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인가요? 교회 안은 뭐가 다른데요. 누가 그에게 빵을 줍니까? 의료비를 줍니까? 학자금을 줍니까? 하나님의 위로요? 그것은 빵과 의료비와 학자금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이 가장 쉽게 남에게 할 수 있는 말이죠.

그렇다고 사도교회처럼 재산을 다 팔아 교회에 바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리어 지금 셰계가 갖고 있는 문제는 내 재산을 다 팔아 구제기관에 헌납해도 바닷가의 모래 한 알을 움직인 효과밖에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거죠. 그걸로 세계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요? 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새로이 주시는 복음이 될겁니다. 그 복음의 새 노래는 어떤 가사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전지구적인(global) 차원의 문제인만큼 그 노래 가사는 “We are the world. We are the one”부터 시작해야 할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과 북한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기독교와 불교가, 그리고 이슬람교가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출발점에 같이 서지 못한다면 이 전지구적인 문제가 해결될 다른 방안이 있을까요? 예수님 시대에 율법이 걸림돌이 된다면 율법을 부수고라도 넘어가야 했듯이 지금 우리 시대에 믿음이 걸림돌이 된다면 믿음을 깨부수고라도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겠죠. 개방과 통합이 필요한 시대에 오늘날 기독교의 믿음은 도리어 세상과 장벽을 쌓는데 나쁜 기여를 하고 있으니 그 믿음이 더 이상 어떻게 복음이 될 수 있겠냐는 겁니다. 기독교는 원래 Good news의 종교인데 그렇다면  복음의 종교답게 우리는 오늘의 세상이 필요로하는 Good News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bad news만 가득찬 이 세상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 혁신적인 Good News는 뭘까요? 사실은 대부분의 혁신이라는 것은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심장은 인간이라는 것! 하나님에게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할 수 없고 이 지구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심장인 인간을, 종말로 내몰린 이 세계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우리 또한 모든 담을 허물고 세계의식을 갖고 교회 바깥과 기꺼이 연대하며 좋은 방법을 찾아주기를 하나님이 바라신다는 것!

저는 어렴풋이 여기서부터 우리의 복음 이야기를 새로 써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바울의 original 사상으로 되돌아가는 것 뿐인데 새로라는 단어를 덧붙여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요.

 

여기까지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저는 믿음 반대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믿음을 중심으로 세워진 곳이고 믿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잖아요. 언덕은 보편적인 다른 교회들보다 자유롭고 깨끗한 교회지만 언덕 역시 전통적인 믿음을 중시하는 곳이잖아요.

 

저는 저의 새로운 믿음에 대해서, 모아보면 얇은 책 한 권 분량 이상의 글을 언덕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카톡에 올렸지만 언덕교우들에게는 그저 낯선 이야기였던 것을 느꼈습니다. 원래부터 저와 관점이 비슷한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저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분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주로 열정에 감복한다는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죠. 제가 바랬던 것은 저에게 좋은 얘기를 해주시는 것이나 저의 열정에 감복하는 것이 아니라 언덕이 하나님과 성서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바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이라는 새 부대에 담을 새 포도주를 찾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좀 지쳤네요.

 

최근 언덕을 떠날 마음을 굳혔었지만 선배되는 몇 몇 분들의 집요한 권고를 받아들여 몇 달 쉬면서 저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그 움직임을 따르고 싶다는 정도로 한 발은 물러서고자 합니다. 반면 언덕교회와 교우들도 저 같은 사람을 계속 언덕에 있게 해서 유익할 것이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돈네코 4월 청도여행은 제가 보이콧해야 할 상황이네요. ㅎㅎ.

 

크고 작은 짐을 끈덕지게 지고 교회를 섬기며 수고하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표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쉬는 동안 개인적인 접촉과 연락은 저에게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 사절하오니 제 뜻을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연말에 교우분들께 별로 힘 안되는 얘기와 개인의 입장을 말씀드려서 송구합니다.

긴 글이라 에둘러 가면 더 길고 지루한 글이 될 것 같아 무례함을 무릎쓰고 단정적으로, 설교 조로 글을 쓴 것에 대해서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배상필 18-12-30 22:57
 
1시간 동안 글을 썼는데 날아갔네요 ㅠㅠ

김영균 집사님이 글을 길게 쓰셔서 넘 짧게 쓰면 안될 것 같아서요^^
나중에 시간날 때 다시 쓰겠습니다. 김 집사님 기다리세요 ^^;
배상필 19-01-01 23:04
 
김 집사님의 장문의 글을 읽으면서 좀 헷갈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집사님이 쉬시려는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집사님이 꼭 언덕을 떠나셔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덕교회의 특징 중에 한 가지는 다양한 신학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시고,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언덕교회에 금년에 왔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언덕교회가 복음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복음주의의 특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성경무오류설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다양한 스펙트럼의 생각을 가진 교우들과 목사님이 계시기에 참 감사했고, 저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처음 독서토론에 참여했을 때 약간은 신선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제가 캐나다의 진보적인(한국에서는 자유주의라고 하는) 신학교를 다녔지만 거기보다 더 진보적인 얘기들이 오가서 놀랍기도 하고, 교회에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 것이 언덕교회만의 독특한 장점이라고도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토론과 그 책을 계기로 해서 ‘예수 세미나’관련 신학자들(마커스 보그, 도미닉 크로산 등)에게 관심을 갖고, 이 분들의 강의를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예수님을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보고,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주로 비유적으로 해석하지만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이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이런 믿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 생각에는 집사님의 신앙적 색깔이 이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집사님이 깨달은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의 뜻(주로 신학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언덕 교우들과 나누어 주셨는데 여전히 다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좀 지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교회가 복음주의이고 이런 신학적 배경을 대부분의 언덕교우들도 갖고 있고, 시중에 유통되는 동영상이나 글이나 베스트셀러도 대부분 이런 배경의 정보를 담고 있어서 정말 이런 진보적인 신학에 관심이 있어서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이 잘 안바뀌는데 특히, 신앙인들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성경에 대한 부분은 더한 것 같습니다.

제가 흥미있게 듣고 있는 복음주의자와 진보적인 신학자의 토론(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는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등)도 보면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목적보다도 서로의 생각이 어떤 부분이 다른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화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더군요.

집사님은 언덕교우들의 생각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하시는데 그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신학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대화를 하는 것 자체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한국에 이런 교회는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집사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외롭기는 하시겠지만 언덕에서 몇몇 교우도 집사님의 신학적 입장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생각이 비슷한 분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바른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같이 알아가고, 가능하다면 관련 주제로 언덕에서 외부 강사 초청이나 세미나 같은 것을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한 가지는 ‘신학’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커스 보그도 기독교를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인간이었는지 신이기도 했는지, 종교다원주의가 맞는지 배타주의가 맞는지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고, 특별히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하고, 한국 교회를 보다 건강하게 하자는데 언덕에서 반대할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서는 신학적 입장과 상관없이 우리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 독서토론에 대해 언급을 잠깐 했지만 여기에 참여해서 좋았던 것 중에 한 가지는 저보다 더 진보적인 신학을 갖고 있는 집사님 같은 분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언덕에 오면서 제가 제일 왼쪽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입다물고 조용히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사님을 뵙고(후에 다른 몇몇 분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맨 끝에 치우쳐 있는 것은 불편한 일이니까요. 집사님이 마음이 힘들고 어려우시다는 것은 알겠는데 언덕에서 집사님의 존재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고, 추후에 저 같은 사람이 또 언덕에 오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도 집사님의 존재는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이상은 집사님이 언덕에서 어떻게 의미있고, 유익한 존재인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집사님 곧 뵙겠습니다~
손종칠 19-01-03 23:01
 
김영균 집사님,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홈페이지와 카톡에 썼던 내용을 잘 정리하면 정말 책 한 권 나올 분량인 것 같아요. 독서토론 내용을 그 때 그 때 기록해 놓고 논쟁점 들을 잘 부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이것이 정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리와 자유의 길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생각해 봅니다. 

감히 말하는대요, 저는 집사님이 올린 모든 글을 다 읽었습니다.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놀라움으로, 때로는 제 생각과 견주어 보면서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도 "마커스 보그빠"라서 집사님의 의견에 큰 틀에서 동의합니다...한국 교회는 그 동안 100년간의 팽창과 외적 성장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이 땅에서.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은 것처럼...이제는 꽤 오랜 기간의 자성과 낮아짐을 겪을 차례가 아닌가 합니다. 

잘 쉬다가 오세요. 집사님의 미소가 그립네요^^;
주재영 19-01-04 16:23
 
저도 신앙적 믿음이 휴머니즘을 해치거나 버리게 만든다면 그런 믿음은 율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휴머니즘은 믿음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결국 행동으로 구현해내는 것이니.
교회다니면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비슷하게라도 흉내내면서 살아가려는 의지와 실천을 추구하고 늘 잊지 않는다면, 이게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고, 그게 바로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잠시 언덕교회를 떠나 쉬시면서 집사님 마음이 다시 언덕으로 향하시길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