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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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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30 01:17
[우리말성경]- 마가복음(Mark) 2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209  

제2장


중풍 환자를 고치심

1.  며칠 후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다시 들어가시자 예수께서 집에 계신다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2.  그러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지 집 안은 물론 문 밖까지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3.  그때 네 사람이 한 중풍 환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4.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계신 곳 바로 위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 환자를 자리에 눕힌 채 달아 내렸습니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6.  거기 앉아 있던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7.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구나. 하나님 한 분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께서는 이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마음으로 곧 알아채시고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9.  중풍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는 말 중 어떤 말이 더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거라.”
12.  그러자 중풍 환자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런 일은 난생처음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13.  예수께서는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아오자 예수께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14.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만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께서 레위에게 말씀하시자 레위는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
15.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많은 세리죄인들이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많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16.  바리새파 사람인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먹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17.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금식과 안식일에 관해 말씀하심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와서 예수께 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19.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데 어떻게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금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한 금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텐데 그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21.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천 조각이 낡은 옷을 잡아당겨 더 찢어지게 된다.
22.  또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 모두를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는데 함께 가던 제자들이 길을 내며 이삭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24.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어째서 저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입니까?”
2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이 필요했을 때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읽어 보지 못했느냐?
26.  아비아달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게 돼 있는 진설병을 다윗이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나눠 주지 않았느냐?”
27.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출처: GOODTV 성경일기]


박경옥 18-06-30 07:16
 
그들의 담대한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네 죄를 용서한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육체적으로 또 전인격적으로 온전한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짐을 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영균 18-06-30 07:24
 
중풍환자에게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 중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예수께서 왜 중풍병자를 앞에두고 누가 묻지도 원치도 않은 죄사함 얘기를 꺼내신걸까요?
중풍환자의 병과 죄를 연관짓는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병을.고쳐주어도 그들은 이 놀라운 실재를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지 못하고 여전히 중풍환자를 관념 속에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사람에게 죄에 대한 벌로 중풍 병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속죄제를 드려서 하나님이 아직 죄를 사해 주시지도 않았는데 병이 고쳐지다니... 저 병을 고친 저 예수는 마귀가 아닌가? 그리고 지금 멀쩡히 걸어다니는 중풍환자 놈은 마귀가 씌운 놈이 아닌가? 저 놈을 더 큰 형벌에 처하든지 아예 죽여버려서 하나님이 아직도 그의 죄를 묻고 있다는.것을 보여주자.

이를 아신 예수님은 실은 병과 죄가 상관이 없는 것을 아시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그의 죄사함을 먼저 선포하시고
곧 이어 병을 고쳐주신 것 같습니다.

중세의 마녀사냥도 사람들이 비슷한 우를 범했던 것이었겠죠.

잘못하면 우라도 지나치게 거룩한 관념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며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물으며
또는 이미 있었던 일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물으며
그 안의 수많은 순간들의 실재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어 '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과정 안에 들어있었던 모든 삶의 순간들도 함께 부정되기 쉬우니까요.

삶의 이 모든 것을.....
사람들이 '실'을 놓치고 '허'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을 궤뚫어보고 계셨던 예수님!

'허'의 삶으로부터 '실'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 구원이며
관념에 매여  실재를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의 '실재'를 만끽하고 사는 것이,
그렇게 되도록 교정하여 주는 것이 예수님의 구원의 큰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경숙 18-06-30 09:35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변방에서 전전긍긍하는 모든 인생에게 안식의 소망으로 삶의 고단함을 치유하시는 아버지의 뜻- 사람이 먼저다-을 담아보렵니다.
     
김희병 18-07-02 19:51
 
권사님 말씀처럼...'핵심은 사람이 먼저다'.를 맘속에 담아봅니다.
최종국 18-06-30 11:50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은혜로 인도되지 않으면 어리석을 뿐이다.
이승조 18-06-30 12:56
 
14.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만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께서 레위에게 말씀하시자 레위는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하는데,  따라다녀서 만날 수도 있고, 레위처럼 평소일 하면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만나는 형태는 달라도 여하튼 만나야겠습니다. 만나는 것은 곧 소명을 확실하게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릴때는 열심히 믿는데 왜 주님이 날 찾지 않으실까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참 쉬울텐데...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주님은 늘 곁에 계셨습니다. 굳이 만났냐 안 만났냐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가족들을 만났냐 안만났냐 따지지 않듯이. 다만 내가 주님을 신경쓰느냐의 문제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만남(그리고 소명)은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의 문제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목마름이 줄어들었고, 다른 한편 해이해졌습니다. 깨달음이 꼭 좋은 쪽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아보입니다. 그래도 덜 불안하고 덜 초조한 것은 소득입니다.
장승희 18-06-30 21:28
 
3.  그때 네 사람이 한 중풍 환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4.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계신 곳 바로 위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 환자를 자리에 눕힌 채 달아 내렸습니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간 네명의 사람과 같이...
그들의 믿음에서 난 행동처럼 누군가를 돕고 살릴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때론 귀찮기도 하고 외면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지금도 손내민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함께 아파하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주세요.
당신께서도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신 것처럼
그래서 나를 만나 주신 것처럼
제게도 멈출 수 없는 사랑과 구원의 감격으로 부터 오는
감사가 흘러가서 삶으로 예수의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강성희 18-07-01 01:12
 
그 때 네 사람이 한 중풍 환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계신 곳 바로 위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 환자를 자리에 눕힌 채 달아 내렸습니다.

감동시키다ㅡ깊이 느끼어 마음이 크게 움직이게 하다.
"네 사람"을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