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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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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5 06:28
[우리말성경]- 마가복음(Mark) 7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282  

제7장


장로들의 전통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몇몇 율법학자들이 예수 곁에 모여 있다가
2.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3.  (바리새파 사람들과 모든 유대 사람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따라 손 씻는 정결의식을 치르지 않고는 먹지 않았고
4.  시장에 다녀와서도 손을 씻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규례는 이것 말고도 잔과 단지와 놋그릇을 씻는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해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위선자들에 대해 이사야가 예언한 말이 옳았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됐다. ‘이 백성들은 입술로만 나를 공경하고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
7.  사람의 훈계를 교리인 양 가르치고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사29:13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붙들고 있구나.”
9.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만의 전통을 지킨다는 구실로 그럴듯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제쳐 두고 있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누구든지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출20:12;출21:17;레20:9
11.  그러나 너희는 ‘내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리려던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됐다’라고 하면 그만이라면서
12.  너희 부모를 더 이상 봉양하지 않으니
13.  너희는 전통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말씀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또 너희가 많은 일들을 이런 식으로 행하고 있다.”
14.  예수께서 다시 사람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잘 듣고 깨달으라.
15.  몸 밖에 있는 것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16.  오히려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17.  예수께서 사람들을 떠나 집안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이 비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18.  그러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몸 밖에서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9.  그것은 사람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결국 몸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20.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21.  사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거짓말, 방탕, 질투, 비방, 교만,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오고 사람을 ‘더럽게’ 한다.”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의 믿음

24.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두로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계시려 했지만 그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25.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여인도 예수의 소식을 듣자마자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26.  그 여인은 수로보니게 출신 그리스 사람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달라고 예수께 애원했습니다.
27.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게 해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가져다가 개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8.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하지만 개들도 식탁 밑에서 자녀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습니다.”
29.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어서 가 보아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귀신은 떠나가고 딸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심

31.  그 후 예수께서 다시 두로시돈 해안을 떠나 데가볼리 지방을 거쳐 갈릴리 호수로 가셨습니다.
32.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와 안수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33.  예수께서 그를 멀찌감치 따로 데리고 가셔서 그의 귓속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손에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34.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숨을 크게 한 번 쉬고는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35.  그러자마자 그 사람은 귀가 뚫리고 혀가 풀리더니 제대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말하고 다녔습니다.
37.  그들이 몹시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김영균 18-07-05 06:35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 겸손한건가요???

제 눈에는 에수님이 하신 말씀을 맞받아쳐 예수님과 맞짱뜨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저 이런 거 좋아해요. 저도 교회에 몇 몇 장로님들과도 예우 따위 무시하고 막 까불고  들이대고 맞먹기 일수거든요. 그런데 저를 밉다 안하고 예뻐해들 주시면 그분들이 엄청 친하게 느껴져요. 저는 친한 사람들이 같이 가자면 어디든 같이가고 같이 하자면 뭐든지 같이하는 성격이거든요. 웬만하면 no를 안해요.

저는 하나님도 근엄한 아버지보다는 편한 형처럼 느껴져요. 막 들이밀고 따지기도 하고  하지마라시는 것도 한 번 해보게 해달라고 막 졸라대요. 그런데 저에게 성내지도 미워하지도 않으시거든요. 그냥 어이없어서  허허 웃을 뿐이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친한 형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편하고 좋으니까.
하나님이 가자면 어디든 다 따라가고 싶어요. 나에게 진짜 좋은 형처럼 해주시는 하나님께 나도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예수님이 헬라여인의 맞장뜨기를 받아주신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몹시 흐뭇합니다.
     
이경숙 18-07-05 08:44
 
"이 여인 겸손한건가요??? "

여인의 삶이 얼마나 절박하고 척박했으면 예수님으로부터 개같은 삶이라는 독설을 듣고도  감내하며 온 마음을 비워내는 절실한 염원에 목메입니다 .....한 줌의 여력이라도 있었다면..... 나라면 ...... 예수님께선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싶었을겁니다. 간절함이 성공으로 이끈다는 어느 책의 목차가 생각납니다만 부자(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수없음의 이유이기도 하지요.
          
김영균 18-07-05 10:32
 
권사님은 여인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신데 저는 재밌자고 2차 댓글 하나 달아요.
도대체 예수님은 어떻게 여인을 '개'로 비유해 모욕할 수 았었을까요? 이거 무지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보통 성깔이 아닌 걸 한 눈에 알아보신거에요. 웬만한 말로는 기죽거나 상처받지 않는...
그래서 그 여인이 감당할만한 걸 아시고 쿡 찔러보신거죠. 여인에게  모욕을 줄 의사는 전혀 없으셨겠죠.
아니나 다를까. 여인은 예수님 말씀을 맞받아치며 맞짱뜬거죠. 예수님은 속으로 껄껄대고 웃으셨을것 같아요.단지 딸을 고쳐줄 뿐만 아니라 삶에 지치고 절박한 상황 앞에선 여인의 기를 자극하여 악착같이 살게하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지혜로운 분인가를 봅니다.
               
이경숙 18-07-18 11:22
 
성깔, 맞짱..... 글쎄요
집사님께서 오히려 여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은 부드럽고 상냥하며 은근한 의사 표현을 바라는 여성 성에 대한 일반적 정체성을 가진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이 여인은 사회적 약자의 표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별로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열세의 위치이고 사회 계층에서도 가난한 위치이며 사회, 법률적 보호에도 기득권이 없는 이방인의 신분입니다. 
 평범하지 않는 여인은 분명합니다.
어쩌다 흘러들어와 이방인으로 주변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모압 이주처럼- 그녀의 지혜로운 입담은 그만큼 질박한 삶으로부터 肉化 된것은 아닐지? 맞짱 뜰 만큼 여인의 염원을 껄껄 웃으시는 주님은 아니셨을겁니다.(웃으시는 예수님을 그린 성화를 본 적 없어서....)
오히려 거친 삶으로 진창으로 망가져있는 이방 여인을 통하여 인류에게 보내는 슬프고 아픈 메시지일겝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은 우리를 측은히 여기심으로부터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심 입니다. -영원한 에덴동산에서 우리가 유리됨은 아담과 이브의 성별 나눔부터입니다......ㅎ
(그래서 하나님의 딸이 아니고 아들이 오셨지만 말입니다......ㅠㅠ)-

성별과 인종을 무론하고 경계를 무론하고 빈부와 사상을 무론하고 먼저 서로 사랑하고 그리고 나누라는 것을 죽기까지 보여주심이 아닐지....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않기가 쉽지않다는 것을 21세기 사회면을 보면 알잖습니까
 삶이 우리를 속이더라도 결코 무너지지않고 살아내려는 여인를 통하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유불문의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악착같이 살게하시는".... 자극보다는 오히려 여인의 <간절함>을 사람들로부터 주목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때 집사님 생각처럼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맡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맡기는 삶을 전 모세같은 지도층과 엘리야같은 엘리트, 혹은 세례요한의 기득권이 아니라 박넝쿨 한 잎에 희비가 교차하는 하박국에서 봅니다.
주님의 시대는 늘 긴장감이 있습니다. 주님의 시간은 늘 간절한 염원이 있습니다. 주님의 삶은 하루하루가 늘 적극적이었습니다.
 종종 예수님의 수명이 33세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딸이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소망으로 측은지심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기'는 조금이라도 가진 자에게 던지시는 표어인 것 같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있습니다."
박경옥 18-07-05 06:56
 
그들이 몹시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그렇게 크게 호들갑을 떨던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믿음이 그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님을 알게해줍니다.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하신 일을 통해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봅니다.
이승조 18-07-05 08:40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붙들고 있구나./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교리만 붙들고 있구나.
장승희 18-07-05 10:41
 
15.  몸 밖에 있는 것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16.  오히려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20.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21.  사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거짓말, 방탕, 질투, 비방, 교만,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오고 사람을 ‘더럽게’ 한다.”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아봤을 때
저는 위에 말씀과 정확히 일치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씀을 붙들고 성령충만함을 구하며
저의 연약함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문득문득 나의 이기적이고 교만한 자아가 튀어나올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실수하지만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수님이 제 마음에 계실 공간이 더 많아진 것이고
솔직한 기도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나아감을 느낍니다.
내 죄가 보였을때 비로소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김희병 18-07-05 12:26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댜시 되돌아보게 되는 말씀이십니다.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최종국 18-07-05 11:30
 
믿음은 예수님을 보는 눈이요, 예수님께 매달리는 손이요, 예수님을 소유하는 능력이다.
배상필 18-07-05 12:02
 
7.  사람의 훈계를 교리인 양 가르치고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사29:13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붙들고 있구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과의 논쟁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 (말씀)'과 '사람의 전통'을 대비해서 그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장에서 안식일 논쟁에서도 비슷한 주제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네요.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것은 중요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종교의 형식에 매여서 남을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그것의 본질적 가르침을 외면하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회개를 촉구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전통(훈계, 교리)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말씀, 뜻, 가치)를 따르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시네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것을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예배의 삶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의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
강성희 18-07-05 23:22
 
바리새파 사람들과 모든 유대 사람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따라 손 씻는 정결의식을 치르지 않고는 먹지 않았고 시장에 다녀와서도 손을 씻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규례는 이것 말고도 잔과 단지와 놋그릇을 씻는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비판들은 접어두고 형식적,외식적이라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비판의 단어들을 '정성'으로 살짝 바꿔 생각해 봅니다. 형식 갖추기도 어느 정도의 신경 씀을 필요로 하는,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요. 현재 우리의 예배는 정성껏 드려지고 있을까요.... 그렇지 못 하다면, 그렇기 어렵다면 형식을 빌어서라도 우리의 성의를 조금이나마 표현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예수님이 혹독하게 비판하신 바리새인들에게 저는 정말 뭐라 못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