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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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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9 06:11
[우리말성경]- 마가복음(Mark) 11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200  

제11장


예루살렘에 도착하심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 근처 벳바게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 두 명을 보내시며
2.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라. 그곳에 들어가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하나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서 이리로 끌고 와라.
3.  만약 누가 ‘왜 이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필요하시니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라.”
4.  그들이 가서 보니 길거리 어느 문 앞에 새끼 나귀가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귀를 풀고 있는데
5.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뭘 하는 것이오? 왜 나귀를 풀고 있소?”
6.  그들이 예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대답하자 그 사람들이 허락해 주었습니다.
7.  그들이 나귀를 예수께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드리자 예수께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8.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겉옷을 깔아 드렸고 또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와 길에 깔기도 했습니다.
9.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따라가는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호산나! 복이 있으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10.  “복이 있도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성전을 청결케 하심

12.  이튿날 베다니를 떠나시려는데 예수께서 배가 고프셨습니다.

세금에 대한 말씀과 부활 논쟁

13.  예수께서 멀리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열매가 있을까 해서 가 보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시니 잎만 무성할 뿐 무화과 열매는 없었습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어느 누구도 네 열매를 따 먹지 못할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15.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마자 예수께서 성전으로 들어가 거기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16.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장사할 물건들을 들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17.  그리고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모든 민족들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말았다.” 사56:7;렘7:11
18.  이 말을 듣고 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죽일 방도를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치심에 놀라는 것을 보고 예수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19.  저녁때가 되자 예수와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20.  이튿날 아침, 예수와 제자들이 지나가다 뿌리째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를 보았습니다.
21.  베드로는 생각이 나서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저주하셨던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누구든지 저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마음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해 주라.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26.  (없음)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거닐고 계시는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다가와서

가장 중요한 계명을 가르치심

28.  물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이런 권세를 주었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한 가지 물어보겠다. 대답해 보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느냐, 사람으로부터 왔느냐? 말해 보라.”
31.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늘로부터 왔다’라고 하면 저 사람이 ‘그러면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할 것이다.
32.  그렇다고 해서 ‘사람으로부터 왔다’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진정한 예언자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33.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잘 모르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박경옥 18-07-09 06:38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이런 권세를 주었소?

참 대답엔 관심 1도 없는 질문, 어제 목사님 말씀처럼 선물이기도 하고 또 의지와 결단이 요구되어지는 '믿음'이 생기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란 생각입니다
김영균 18-07-09 07:37
 
11장의 에수님은 온통 이상해 보이네요.

첫번째 제자들에게 남의 나귀 새끼를 데려오게 함에 있어서 먼저 나귀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데려오라 하지 않으시고 끈을 풀어 데려오다가 사람들이 혹 뭐라하면 주가 쓰실 것이라고 하고 데려오라 하시고(엄밀히 말하면 도적질)

두번째. 열매맺을 때도 아닌 무화과 나무를 괜시리 저주하여 아무 잘못없는 무화과 나무를 영원히 말라죽게 하시고

세번째 그래도 이건 좀  낫지만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분노하여 난장판을 만드시고

네번째 예수의 말씀대로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를 보고 신기해하는 제자들 앞에서 뭔가 우쭐하셔서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산더러 뽑혀 바다에 던지우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 속된 말로 뻥을 치시고

제가 알던 예수님과 너무 달라요.
저의 결론.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만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기적과 가르침을 베푼 것이 아니고 다른 여러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다니며 예수님과 비슷한 행적을 베풀고 다녔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이 예수님.사후 약 40년 지나 기록된 것을 감안한다면 마가복음 저자가 예수의 행적에 대해 모으던 중 다른 사파 자칭 하나님의 아들의 행적을 예수님의 행적으로 잘못 수집하여 기록에 끼워넣은 것이라고 저는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가 나무 한그루를 봐도 애정과 연민을 느끼거늘 홧김에 아무 잘못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하시는 예수님은 상상할 수 없네요.. 그리고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달라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들에게 단지 보여주기 위한 표적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시려 했던 분이었는데,  사람에게 유익할 때만 표적을 사용하셨는데 오늘의 예수님은 기적을 남용하고 계시잖아요. 그 당시 하나님의 아들을 사칭하던 사람들이 기적 중심으로 보여주며 (가짜 기적이었을수도 있겠지만)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제자들도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최종국 18-07-09 12:29
 
믿음이 있으면 산을 움직일 수 있으며, 불신은 자기 자신의 실존까지도 부인한다
배상필 18-07-09 16:38
 
17.  그리고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모든 민족들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말았다.” 사56:7;렘7:11
18.  이 말을 듣고 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죽일 방도를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치심에 놀라는 것을 보고 예수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당시 동물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는 정결한(상처 없는) 것을 바쳐야 해서 집에서 먼길을 끌고 가기 보다 성전에서 살 수 밖에 없었고, 성전세를 이방화폐로는 받지 않았기에 성전의 공식 화폐인 두로의 동전으로 교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폭리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가 있었고, 더욱 문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 상인들과 결탁해서 이득을 얻는 구조였다는데 있습니다.

잎은 무성하지만 기대하는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사건은 성경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삶으로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어제 목사님의 설교에서 '믿음'이 '삶'이고 '삶'이 '믿음'이라고 하셨는데, 아는 만큼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기가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영균 18-07-09 18:44
 
믿음이란 무엇인지요?

한국어로는 '믿음'이라는 단어 하나로 통용되지만 조금 다른 두가지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는 신뢰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신뢰라는 단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객관적으로 보면  신뢰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예를들면 믿던 친구가 어쩌다 나에게 해로운 일을 행했을 때, 가족이 볼 때 전지전능한줄 알았던  한 가정의 가장이 사업적으로 파산했을 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는데 반대의 일이 일어났을 때 등을 상상하면 신뢰라는 단어의 개념이 금방 잡힐 것 같습니다. 신뢰의  중요한 특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콩이 숙성해서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되듯이 세월을 묵어 만들어지는 것이 신뢰입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내가 상대를 깊이 그리고 제대로 알고 있다는 확신없이 신뢰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믿음은 신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신뢰의 특징이  오래 숙성되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라면 믿음은 믿고자 하는 마음, 의지,  상대에 거는 기대 등이 포함된, 한마디로 말하면 긍정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나와 대상 사이에 서로 이해할만한 어떤 것이 없을 때, 그래서 낯섦과 두려움이 더 클때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보다 좋은 점이 많겠지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저는 믿음보다도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자믿자 하는 생각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신뢰가 아니라 도리어 세월을 묵으며  수없이 불신할 수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그런 가운데 상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기도 하면서) 바로 알게 되고 바로 알고 나니까 전에 알던 거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상대의 진실에 가까움을 알때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어떤 한쪽을 선택하거나 결정하고 그 다음에는 끊임없이 믿음을 주문외듯이 외워 믿음을 쌓는 방법을 저는 경계합니다. 성경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은 눈감고 건너뛰고 쉽게 이해되고 가슴에 와닿는 구절만으로 믿음을 쌓는다면 거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뢰가 만들어질까요?

있는그대로 보기-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이해되지 않는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기- 그리고 더 제대로 알고싶어하기-실망과 좌절도 겪으면서 새로 알게돤 진실에 대해서 수용하기 -이 모든 진통을 격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자는 것. 저는 이것이 더 진정한 신뢰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단지 믿음을 구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냉철하게, 때로는 아프게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강성희 18-07-09 21:34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해 주라.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어제 목사님 설교 중에...믿기 때문에 행동하는게 아니라 행동이 곧 믿음이라고 하셨던가요...주를 믿는다고 하는 나의 행동은 한낱 인간의 행위에 그치는게 아님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등진 사람 용서하기, 원수 사랑하기...저에겐 유난히 더 힘들고 괴로운 항목입니다ㅠ
이승조 18-07-10 07:56
 
17.  그리고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모든 민족들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말았다.” / 기도의 집과 강도의 소굴은 종이 한 장 차이. 내 하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