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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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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25 06:10
[우리말성경]- 누가복음(Luke) 11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224  

제11장


주기도문

1.  예수께서 어느 한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주께서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아버지여,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4.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5.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누가 친구가 있는데 한밤중에 그가 찾아와 ‘친구여, 내게 빵 세 덩이만 빌려 주게.
6.  내 친구가 여행길에 나를 만나러 왔는데 내놓을 게 없어서 그렇다네’ 할 때
7.  그 사람이 안에서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다 잠겼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벌써 잠자리에 들었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뭘 줄 수가 없네’라고 거절할 수 있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는 그가 일어나 빵을 갖다 주지 않을지라도, 끈질기게 졸라 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2.  또 자녀가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있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와 바알세불

14.  예수께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고 계셨습니다. 그 귀신이 나오자 말 못하던 사람이 말하게 됐고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15.  그러나 그중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예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16.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할 속셈으로 하늘의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서로 갈라져 싸우면 망하게 되고 가정도 서로 갈라져 싸우면 무너진다.
18.  사탄도 역시 서로 갈라져 싸우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니
19.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내쫓는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는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온 것이다.
21.  힘센 사람이 완전 무장을 하고 집을 지키고 있다면 그 재산은 안전할 것이다.
22.  그러나 힘이 더 센 사람이 공격해 그를 이기면 그가 의지하는 무장을 모두 해제시키고 자기가 노략한 것을 나눠 줄 것이다.
23.  나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
24.  한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으려고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내가 전에 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25.  그런데 그곳에 이르러 보니 집이 깨끗하게 청소돼 있고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26.  그래서 더러운 영은 나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와 그곳에 들어가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지막 상황은 처음보다 훨씬 더 나빠진다.”
27.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을 낳아 젖 먹이며 기르신 어머니는 정말 복 있는 분입니다!”
2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정말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

29.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자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그들은 표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표적 외에는 어떤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은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이 세대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33.  등불을 켜서 은밀한 장소에 두거나 그릇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오직 등불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등잔대 위에 얹어 두는 법이다.
34.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눈이 좋으면 너희 온몸도 밝을 것이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몸도 어두울 것이다.
35.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보라.
36.  만약 너희 온몸이 빛으로 가득하고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너희를 환하게 비출 때처럼 너희 몸도 온전히 빛날 것이다.”

여섯 가지 화를 말씀하심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바리새파 한 사람이 자기 집에서 잡수시기를 청하자 예수께서 안으로 들어가 식탁에 기대어 앉으셨습니다.
38.  그런데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께서 음식을 들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39.  그러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너희 속에는 욕심사악함이 가득 차 있다.
40.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운향과 온갖 채소들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정작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무시해 버리는구나. 그런 것들도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43.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 좋아하고 시장에서 인사받기 좋아하는구나.
44.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 같아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나 무덤인 줄 모른다.”
45.  한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는 것입니다.”
46.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율법학자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백성들에게 지기 힘든 어려운 짐을 지우면서 너희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 하지 않는구나.
47.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 바로 너희 조상들이 그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이었다.
48.  그래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저지른 일을 인정하고 찬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기 때문이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도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낼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 중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핍박할 것이다.’
50.  그러므로 이 세대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흘린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말이다. 그렇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52.  너희 율법학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막았다.”
53.  예수께서 그곳에서 나오실 때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격렬하게 적대시하며 여러 가지 질문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54.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트집을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출처: GOOD TV 성경읽기]


최종국 18-07-25 06:2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책망하시며, 예수님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 우매함을 '등불 비유'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마음에 빛이 없어 이미 주신 표적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그들을 지적하삽니다. 그리스도인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적인 눈으로 우리 삶을 밝게 비추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생명을 소유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경옥 18-07-25 06:27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
깨끗하게 되는 것은 온갖 조건을 갖다 붙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일일지도...
김영균 18-07-25 07:26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

과연 그런가요? 우리는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것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나요? 마음 속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을 때도 우리의 믿음은 '그렇다'라고 말하도록,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고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내도록 우리는 오랜 세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저도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하나 찾아 그럴듯하게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마다 찾고 두드리는 자마다 열린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우리 외부에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는 분이라고  가정하면 정말 '그렇다'라고 고백하기는 힘듭니다. 만일 그랬다면 기독교인인데 경제적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우리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을테고 세상에는 근심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어야겠죠. 그런 것들이 우리가 주로 구하는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하늘에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거의 응답을 안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도, 세상에도 문제는 늘 넘쳐나니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신 건가요?

하나님이 외부에 계시지 않고 나와 연합되어 내 안에 거하신다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구하면(갈망하면) 그것은 분명히 내 안에 어떤 변화를 낳습니다. 구한다는 뜻은  하나님께 문제를 풀어달라고 전적으로 숙제를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내가 숙제를 풀겠다는 간절하고 확고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찾는 것도 두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찾고 또 찾아서 못찾는 것은 그리많지 않습니다. 애타게 필사적으로 두드리면 열리지 않는 문도 그리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부에서 우리가 구할 때마다 요술방망이를 두드려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서 간절히 구하고 뛰고 두드리고 찾는 만큼 나와 함께 내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입니다.

13절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뚱딴지같이 '성령'을 언급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위에 설명한 저의 생각을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요술방망이 대신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됩니다. 자웅일체처럼 하나됩니다. 내가 뛰면 하나님도 같이 뛰지만 내가 꼼짝않고 있으면 하나님도 같이 가만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술방망이 대신에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자 하십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간절히 구해지는 곳을, 무언가가 찾아져야하는 곳을, 무언가가 열려져야하는 곳을 예수께서 늘 찾아다니며 몸을 던져 사역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러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과 삶으로 구하는만큼, 찾는만큼, 두드리는만큼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강성희 18-07-26 01:00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구하면(갈망하면) 그것은 분명히 내 안에 어떤 변화를 낳습니다. 구한다는 뜻은  하나님께 문제를 풀어달라고 전적으로 숙제를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내가 숙제를 풀겠다는 간절하고 확고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찾는 것도 두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감이예요~
세상은 잘 변하지 않더라구요. 변하는 것은 내 마음, 내 생각일 뿐이겠지요.
받지 못 하고 찾지 못 하고 열리지 않을지라도
친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웃고 떠드는 연예인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인터넷 기사의 댓글 속에 모르는 이가 남긴 어느 한 줄, 길에서 마주친 못마땅한 어떤 사람의 모습, 혹은 들풀 한 포기가 퍼뜩 던지고 가는 주님의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그래서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는 것을 느끼는 것, 이것이 기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경숙 권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도 바라던 요술 방망이와는 늘 다른 모습의 방망이를 찾게 되지만 그로 인해 또 조금씩 성숙해지겠지요......?
김영균 18-07-25 07:30
 
늘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씁니다. 제가 사는 꼴을 스스로 아는 저는 한숨만 나옵니다. 위선자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대꾸할 말이 없습니다. 단지 제가 쓰는 글들이 제 입에 스스로 물린 재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썻으니 조금은 변해야 사람이지.....늘 이런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제 주제넘은 글 때문에 혹 교우분들께서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경숙 18-07-25 07:41
 
"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의 요술 방망이를 보게 되더군요. 물론 내가 바라던 요술 방망이와는 늘 달랐습니다만......ㅎ
          
박경옥 18-07-25 16:56
 
저는 끊임없이 요술방망이길 바라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인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칭얼거리며 쫄라댈 수 있는 그 관계가 너무 좋습니다 \(^0^)/
이경숙 18-07-25 07:30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보다 우리가 빚진 모든 사람이 더 많습니다,-  "두 사람 다 빚 갚을 돈이 없어 채권자가 두 사람의 빚을 모두 없애 주었다. 그러면 두 사람 중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누7:42) - 주님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아멘
장승희 18-07-25 13:52
 
“정말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복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복이 또 누군가에게 그리고 세상에 흘러가길 기도합니다.
저는 그저 통로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박창훈 18-07-25 17:40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들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정작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무시해 버리는구나."
공의와 사랑,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깨닫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김영균 18-07-25 18:03
 
두 분이나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대고 졸라댈 수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을 보편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계와 미지의 영역으로 인해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게 어떤 형태의 초월자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대상에게 의지하는 것은 위안이 되어줍니다. 모든 종교가 갖는 긍정적 의미에 해당하는 것이겠죠. 이 영역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는 댓가로 선하고 도덕적인  삶으로 초월자에게 보답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초월자와 내가 선의를 나누는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초월자도 나에게 실제로는 '응답' 등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큰 상관없고 나도 세계에 대한 보편윤리적 선의 이상으로 어떤 책임을 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신앙의 길은 여기에서 더 심화되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책임을 지고 걸어가야하는 길입니다. 이웃은 단지 기도해줘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그의 짐을 지고 책임을 져야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전에(자기 위안을 구하는 종교의 영역에서) 완전히 타자이던 사람들이 이웃으로 다가옵니다. 보편의 생각으로 사는 길로 가면 죽는 길이고 죽는 길로 가야 사는 길이 된다고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내 가진 것을 다 팔아 맞바꾸어야하는 새로운 세계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과 길은 보편 종교의 길이 아니라 신앙의 길이었기에 우리가 따라가기 이토록 힘든것 같습니다.  아니, 따라갈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것 같습니다.
개인의 이름을 호명해서 좀 죄송하지만 요즈음 배상필 집사님의 글에서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기를 스스로 결단하고 은근히 우리에게도.촉구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무서운 집사님의 등장에 저는 바짝 쫄아있습니다. ㅎㅎ

참 그리고 댓글다신 두 분의 신앙을 보편종교로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단지 우리의 신앙에서 하나님을 기대고 싶은 부분은 보편죵교와 공통분모를 가질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니 오해는 없으시길....
두 분 다 신앙적으로 내공이 대단하신 분들이기에 이렇게 거리낌없이 2차 댓글 달 수 있는.것 아시죠?
저는 말뿐인 사람. 늘 건방떨어 죄송합니다.
     
이경숙 18-07-27 08:26
 
죄송하지마세요......ㅎ

펼쳐 보이신 집사님의 신학관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로 인하여 나태한 우리의 신앙에 활력을 넣고자 애씀에 환영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신앙관을 서로 비교하는 것 지양할 부분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과 글이 모두에게 공감되는 것 아닙니다. 의견이 다른 부분은 근거에 의한 1:1일로 피력함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며 일방적 추측으로 다수를 향하여 쓰여진 글은 읽는 분들에게 고정된 선입관을 갖게 합니다. 생각의 차이보다는 다름의 다양성을 알고 배우고 싶습니다. 계속적인 집필을 기대하는 일인의 사족입니다^^
배상필 18-07-25 18:12
 
27.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을 낳아 젖 먹이며 기르신 어머니는 정말 복 있는 분입니다!”
2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정말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39.  그러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너희 속에는 욕심과 사악함이 가득 차 있다.
40.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지키는 사람의 복이 예수님을 낳은 복보다 더하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욕심과 사악함을 책망하면서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율법에 대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비를 베푸는 삶이라고 말씀을 하시네요.

저의 주변에 있는 가족들, 직원들, 직장이 있는 상가의 이웃들, 지인들이 저를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 지 궁금합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속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보실까 두려운 마음도 드네요. 하나님이 저를 아름답게 빚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승조 18-07-26 06:23
 
10.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내가 독단적으로 하든, "내주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든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을 받고 찾고 열리게 되는가가 문제인 듯 합니다. 과연 받는 것은  무엇이며, 찾는 것은 무엇이며, 또 열리는 것은 무엇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먼저이고 어떻게 구할 것인가는 나중 문제인 것 같습니다. 원하는 바가 사전적으로 고정되어있는 경우, 구해도 찾아도 두드려도 안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희망도 많이 갖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를 고정한 경우, 대개는 이 구절을 깊이 믿게 되지 않습니다. 잘 믿지 않으니 실망도 잘 안하고, 또 아예 구하기를 게을리합니다. 구하는 경우에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악순환입니다. 믿지 않으니 잘 안구하고, 잘 안구하니 잘 안 이루어지고, 잘 안 이루어지니 잘 믿지 못하고.
그렇다면 위에서 집사님이 말씀하신 "내주하시는 주님"이 좋은 답인가 싶습니다. 주님께, 주님과 함께 구하면서, 찾으면서, 두드리면서 원하는 바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하는 것, 찾는 것, 두드리는 것을 새롭게 되새깁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과 가까워집니다. 그 과정에서 위안을 받고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동행함을 느낍니다. 내가 원하던 가치와 진정한 가치가 만나게도 됩니다. 주님의 나라를 구하게도 됩니다. 이때가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때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몸담고 살면서 원하는 것이 안되는 일이 많은 우리 인생들에게 이 구절은 매우 어렵게 다가 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세상을 살면서 눈을 내리깔지 말고, 눈을 들어 위를 보라는 위안과 격려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안과 격려를 몸으로 느낄 때 나는 이미 이루어지는 삶을 사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높은 산을 오르면서 산을 정복한 것보다 아버지와 함께 동행했던 과정 자체가 행복이었던 것을 기억해 봅니다. 이 귀절에 대해서 제대로 구하고, 제대로 찾고, 제대로 두드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런 말은 좀 불편합니다. 내 아버지 주님께 구하는데 무엇이 잘못되겠으며 구하지 못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편하게 떼쓸 수 있는 주님이라 생각합니다. 떼쓰면 야단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만....
김영균 18-07-26 06:37
 
저도 실은 하나님께 졸라대고 들이밀고 그러다 가끔 야단맞는 것도 즐기는 1인입니다. ㅋㅋ
아래는 7월 4일 저의 댓글입니다.

저는 하나님도 어려운 아버지보다는 편한 형처럼 느껴져요. 막 들이밀고 따지기도 하고  하지마라시는 것도 한 번 해보게 해달라고 막 졸라대요. 그런데 저에게 성내지도 미워하지도 않으시거든요.
그냥 어이없어서  허허 웃을 뿐이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친한 형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편하고 좋으니까.
하나님이 가자면 어디든 다 따라가고 싶어요. 나에게 진짜 좋은 형처럼 해주시는 하나님께 나도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예수님이 헬라여인의 맞장뜨기를 받아주신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몹시 흐뭇합니다.
최종국 18-07-26 12:38
 
그리스도인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적인 눈으로 우리 삶을 밝게 비추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생명을 소유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