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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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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10 06:17
[우리말성경]- 요한복음(John) 3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270  

제3장


니고데모가 예수를 방문함

1.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 공회 지도자였습니다.
2.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행하신 그런 표적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습니까? 태어나려고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7.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
9.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1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는데 너희는 우리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2.  내가 땅의 것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것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곧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없다.
14.  모세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의 독생자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것인데, 곧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 대신 어둠을 사랑한 것이다.
20.  악을 행하는 사람마다 빛을 미워하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해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21.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증거함

22.  그 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얼마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23.  요한도 살렘 가까이에 있는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24.  이때는 요한이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습니다.
25.  요한의 제자들 중 몇 사람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의식과 관련해 논쟁이 붙었습니다.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전에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선생님이 증거하셨던 그분이 지금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
27.  이 말에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내가 전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한 말을 증거할 사람들은 바로 너희다.
29.  신부를 얻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
30.  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31.  위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해 땅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34.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성령을 한없이 주셨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안에 맡기셨다.
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출처: GOOD TV 성경읽기]


이경숙 18-08-10 07:18
 
신부를 얻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

이런 사람 없습니다^^........
어쩌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이의 선택에 대한 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영균 18-08-10 08:51
 
3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남!
공관복음서들이 예수의 언행을 단순 진술하는 형태로 기록하였다면 그 후에 쓰여진 요한복음은 예수의 언행을 ‘개념화’하는 단계로 진보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선행하여 기독교의 개념 체계를 만든 사람은 물론 바울이지만 공관복음서를 쓴 제자그룹들은 경쟁자 비슷하기도 한 바울의 개념체계를 호락호락하게 수용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관복음서와 바울서신은 비슷하게 가면서도 결코 만나지 않는 평행선 같은 느낌인 반면 요한복음은 바울서신과 지점지점 만나면서 바울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공관복음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쫒아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라고 (아마도 무지 힘들게) 예수를 배우고 쫒는데 방점을 두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3절 이후를 보면 거듭남이 사람과는 별로 상관없이 ‘하늘’에서 주관하여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하늘의 주관적인 은총'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은 독생자를 믿음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자
첫째, 계명들을 지키라
둘째, 너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셋재, 와서 나를 쫒으라고 하십니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개념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주목받지 못하는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세우시고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보다 ‘타자’를 앞세우시고 우리가 ‘타자’를 섬기고 돌보는 것이 예수님께 한 것과 같은 것이라 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타자’는 빠지고 ‘나와 예수님’만 남습니다.

결국 공관복음서들은 우리가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과정과정마다에 방점을 찍는 반면, 요한복음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믿음이라는 관념에 모든 것을 포함시키는 것 같습니다. 산발적인 사고들이 관념으로 묶이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진전임은 틀림없지만 관념의 맹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여 온갖 종교 사기꾼들을 양산할 수 있었던 토양도 바울서신과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종교의 관념화에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4절 이후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면서 하늘로서 온 분이며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이는 요한이 옥에 갇히기 직전에 한 얘기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요한이 옥에 갇히기 직전에 예수님께 제자를 보내 “오실 그 이가 당신이 맞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에 대해 높여주기는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회개하라’는 메시지만 외쳤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요한이 예수를 믿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36절)라고 말했다고 단독적인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옥에 갇히기 직전 요한의 진술이 두 복음서 간에 너무 상반됩니다.

우리의 믿음, 그리고 믿음으로 인도한 교리들은 공관복음서보다는 요한복음에 기초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그만큼 요한복음은 체계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진전되어 있고 믿음의 대상인 종교로서 틀을 갖추어가는 느낌이긴 하지만, ‘순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관복음에 비해 달고 쌉싸름하고 구미가 당기는 것을 많이 타서 각색된 느낌이 드는 것도 지우기가 쉽지는 않네요.
장승희 18-08-10 10:34
 
20.  악을 행하는 사람마다 빛을 미워하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해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21.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처음 내 안에 말씀이 비춰졌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어찌나 따끔하고 아픈지 귀를 막고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오랜 반항과 자기 합리화를 하는 대담한 내적, 외적 갈등을 겪었던 시간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주님 말씀에 두손 두발 다 들자 눈물이 쏟아지고
처절한 회개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일부러 살아남기 위해 다그쳐진 제 영혼이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전에는 혼자 숨고 싶어서 사람들과도 잘 섞이지 못했는데 지금은 여전히 부족해도 말씀을 붙잡습니다. 빛으로  나아옵니다. 내가 맛보아 너무 좋은 것이기에 나누고 싶습니다.

같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때도 그때의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부분에 촛점이 맞춰지듯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람들과 대화를 할때도 상대에 따라 더 중요하게 얘기하는 부분이 달라집니다. 그것을 일관성 없다고 말하면 할말이 없지만... 그의 열매를 보면 알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사기칠수 없습니다. 거짓증언 할수 없습니다.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누군가의 뒷통수를 칠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그렇다면 그것은 아직 주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잠시 욕망에 흔들려 실수할 수 있겠지만 이내 돌아와 그 전보다 더 자신을 제대로 마주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자 전화위복의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빛으로 나오십시오. 빛으로 가까이 갈수록 나의 더럽고 추악한모습이 더 자세히 보여 괴롭겠지만 그 시간들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시고 진정으로 거듭나셔서 세상에서 작은 예수로 사십시다!
최종국 18-08-10 12:48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김영균 18-08-10 15:34
 
제가 올리는 댓글들이 너무 비평적이고 분석적 접근 방식을 취해서 다른 분들이 말씀으로부터 은혜와 감동을 맛보는데 방해가 될까 한편 걱정이 됩니다. 저와 달리 시처럼, 노래처럼, 사랑의 밀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데서 얻는 유익도 크다 봅니다.
그리고 저도 '사랑'이란 두 글자에 눈이 멀 수 있는 가슴을 아직은 가진 사람입니다. 요즈음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과의 사랑에 이미  조금씩 눈이 멀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예수인 것'과 '예수 아닌 것'을 분리하여 예수 아닌 것으로부터 예수인 것을 지키려 발버둥 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엉성한 제 나름의  판단으로요. 어쨋든 다른 분들은 저의 글을 개의치 마시고 각자의 마음에 맞게 댓글을 달아주시면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시를 읽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고 노래하는
가슴으로 한 번 화답해봅니다.

16절 . 하나님이 세상을(사람을)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 만이 사람으로부터 위로받을 자격이있습니다. 사람을 기대하는 사람 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볼 수 있습니다. 그.누가 인간을 죄로 더럽다했습니까?

예수님의 꿈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도 '사람', 오로지 그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진 십자가도 '사람',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오욕과 칠정으로 더럽혀져 있다해도
때로 '사람'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남아있다면 그 분은 땅바닥에 이렇게 쓰고- '나는 너를 죄없다 하노라' -....
따뜻한 품벌려 나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사람 만이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희망도 사람입니다.
     
이승조 18-08-14 18:01
 
괜한 걱정. 악보을 잘 분석해야 좀 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 않는가요. 분석하면 차가운 노래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같은 악보를 놓고 해석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노래 부를 수 있어서 더 좋지 않을까 싶군요. 재미있게 많이 배웁니다. 계속 고.
배상필 18-08-11 00:27
 
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노가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믿음'과 '순종'을 동전의 양면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1장 5절에서 자신이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된다고 하고, 로마서 마지막장인 16장 26절에서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한다고 기록을 하고 있네요. 요한복음의 저자도 예수님을 믿는 것을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들을 믿어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하는데, 영생을 영원히 사는 양적인 개념보다는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생생한 교제(요 17:3)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고, 한편으로 진노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단절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혜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고, 내 힘으로 높은 성을 쌓을지라도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음을 알기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큰 복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성희 18-08-13 01:55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
이승조 18-08-14 17:46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심판은 믿지 않음에 대한 심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니 믿음과 행위는 같이 가는 것이 분명한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