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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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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1 06:32
[우리말성경]- 사도행전 (Acts) 4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174  

제4장


공회 앞에 선 베드로와 요한

1.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2.  그들은 두 사도가 사람들을 가르치며 예수를 들어 죽은 사람의 부활을 전파하는 것 때문에 심기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이미 저녁이었기 때문에 다음날까지 감옥에 가둬 놓았습니다.
4.  그러나 사도들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됐고 그리하여 믿게 된 남자의 수가 5,000명쯤으로 늘어났습니다.
5.  이튿날 통치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6.  거기에는 대제사장 안나스가 있었고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와 대제사장 가문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7.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앞에 세워 놓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했느냐?”라고 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8.  그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백성의 통치자들과 장로들이여,
9.  오늘 여러분이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선한 일에 대해 해명하라고 우리를 부른 것이라면 또 그가 어떻게 낫게 됐는지 묻는 것이라면
10.  여러분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다 나아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된 것입니다.
11.  이 예수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시118:22
12.  예수 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듯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비로소 그들이 과거에 예수와 내내 함께 있던 사람인 줄 알게 됐습니다.
14.  게다가 병이 나은 사람이 두 사도 곁에 서 있는 것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15.  그래서 그들은 그 사람들을 공회 밖으로 나가도록 명령하고 함께 의논했습니다.
16.  그들이 서로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요? 그들이 대단한 기적을 행했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17.  어쨌든 이 일이 백성들 사이에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하려면 이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18.  그러고 나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들여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19.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사도들을 다시금 협박하고 나서야 겨우 풀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그 사람은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와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

23.  베드로와 요한도 풀려나자마자 자기 동료들에게 돌아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2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함께 소리 높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25.  주께서는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해 성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째서 민족들이 분노하며 사람들이 헛된 음모를 꾸미는가?
26.  세상의 왕들이 일어나고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있구나.’ 시2:1-2
27.  그런데 정말 헤롯 안티파스와 본디오 빌라도가 주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반대하며 음모를 꾸미려고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성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28.  주의 능력과 뜻에 의해 미리 정하신 일을 그들이 단지 이룬 것뿐입니다.
29.  그러니 주여, 그들의 위협을 보고 주의 종들을 도와 주의 말씀담대하게 전하게 하소서.
30.  주의 손을 펴서 주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을 통해 병을 고치게 하시고 표적기사를 행하게 하소서.”
31.  그들이 기도를 마치자 모여 있던 곳이 진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져 하나님의 말씀담대하게 전했습니다.
32.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됐습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가진 것을 모두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33.  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에 대해 증거했고 풍성한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34.  그들 가운데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따금씩 땅이나 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습니다. 그러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었기 때문입니다.
36.  키프로스 출신인 요셉이라는 레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도 불렀는데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37.  그 사람이 자기의 밭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이경숙 18-09-01 06:41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됐습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가진 것을 모두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에 대해 증거했고 풍성한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에 완전한 공동체의 불안정한 유토피아의 기반이 권능과 은혜라는 창과 방패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누구나 누리는 은혜와는 다르게 독과점적으로 받은 권능에 대한 욕구로 인한 불평등적인 불만은 공정한 경제질서를 내세우는 21c에서도 풀 수 없는  주님 오실 때가지의 숙제로 보입니다.
이승예 18-09-01 08:02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었습니다 
예수 부활에 대해 증거했고  풍서한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언덕이 이런교회 되게하소서 ♡
     
이경숙 18-09-01 08:13
 
예전에 늘 그리운 언덕 교우와  한마음, 한뜻이 되는 언덕을 꿈구는 이야기를 종종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안 중 하나가 수도원같은 비빌 곳 있는 쉬었다 갈 수 있는 나즈막한 언덕이었지요. 대중성(수)보다는 가치(정신)를 따르자는 의견을 나눗던 시간들이 그립네요.....
김영균 18-09-01 09:16
 
저에게는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그들은 밭을 팔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다 내놓아 통용하였습니자.
왜 그랬을까요?

추측할 수 있는 이유들!

1. 어차피 종말이 가까우니 소유가 덜 중요하다 느껴져서
2. 막대한 초대교회 운영자금과 특히 선교자금을 위해서...

1은 미래에 올 삶 때문에 현재의 삶을 덜 중시하게 되는 경우고
2는 명분 있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경우겠네요.

하지만 현재의 삶, 자신의 삶.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기보다는 충실하고 알찬 현재의 순간들로 엮은 단단한 미래를 만들어가야하며
어떤 아름다운 목적을 위해서도 그 하나의 악기를 위해  오케스트라와 같은 삶의 다채로운 영역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통용하는 공동체가 공동체 아닌 다른 무엇을 기다리는 대기장소가 될수가 있죠.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지금도 빈번하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새로운 형태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어떤 오케스트라적 콘텐츠가 있는 공동체를 꿈꿔서
재산을 주저없이 내놓아 통용하며 속한 공동체를 하나님나라에 가깝게 가꾸어가려고 꿈꿔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는 미래에 외부의 힘(하늘)에 의해 도래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지금의
삶의 질을 포기하는 종교적 인간을 양성하고 후자는 종교와 문화가 결합된 질적으로 더 나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금 손수 만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둘 중 어느것이 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나라에 가까울까요?
제게는 후자인데 초대교회는 전자의 경우에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들이 조금 안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지금 사랑!
초대교회에 그것아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이경숙 18-09-01 11:15
 
"2. 막대한 초대교회 운영자금과 특히 선교자금을 위해서..."

바울 서신을 보면 초대교회의 운영자금과 선교자금이란 것이 그렇게 막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십시일반, 그리고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는 정도랄까?  바울과 베드로 사후 들불같이 일어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는 세계정치인 로마의 흥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가 공화정(귀족)에서 제정시대(1인)로 들면서  정치, 사회적 부패와 노예제도를 기반한 확장된 영토와 경제는 이웃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갈등과 균열을 낳고 동쪽의 비잔틴 문화권인 오스만터어키의 부상으로 결국 멸망하게됩니다만 바울과 베드로의 공동체 이야기는 적어도 313년 비잔틴제국의 황제 콘스탄틴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화여 세계화의 종교로 전도 전파하기까지 까마득하게 먼 후일의 자금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1번의 종말론적인 생각이 곧 오실 예수에 대한 열망이 공산화 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영균 18-09-01 11:31
 
도움되는 내용 감사힙니자.

제 글의 후반부에서 후자는 앞의 1과 2와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전자와 후자로 나누이는데 그렇게 이해하신 것 맞죠?
               
이경숙 18-09-01 13:32
 
"그 하나의 악기를 위해  오케스트라와 같은 삶의 다채로운 영역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어떤 삶으로 살 것인지는 선택일 것 같습니다.
웅장한 하모니의 오케스트라가 좋기는 하지만 저는 악기의 특색에 따라 연주하는 독주도 참 좋아합니다. 젊었을 때는 첼로의 깊은 음색에 매료되었지만 요즘은 바이올린이 가진 날렵하고 선명한 음색이 좋아집니다. 아마 청력의 노화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 성악에서는 독창보다는 함께 소리를 모으는 합창이나 중창은 여전히 좋아요.
현재 삶보다 내세의 삶을 바라보는 수도승들은 소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 있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날마다 행복해지려 애쓰는 많은 우리도 함께 있기에 어떤 선택이 행운이었는지는 늘 숙제로 생각됩니다.
늘 생각해보기를 권하시는 집사님의 '딴지'는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드네요.
하지만 현실은 집중력도 호기심도 노안과 함께 시들해져 꼭 읽어보라는 책 한 권도 못 읽고 있다는 겁니다.....ㅠㅠ
집사님의 걱정스런 댓글보다는 생각하시는 바를 펼치시는 글들에 잊고 잃어버린 생각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어 좋습니다만 가끔씩 게으른 딴지도 올려야 다른 시선에도 생각이 미치지않을까하는 노파심입니다만
김 집사님의 악기가 모두 함께 하는 목소리랑 어울릴 때를  기다려봅니다. -ㅎ
                    
김영균 18-09-01 15:33
 
저는 태생이 경계인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좋자고 좀 더 멋있는말로 하면 아웃사이더.
함께하는 목소리에 어울리기보다는 '다른 북소리'로 사는게 좋아요. 실은 다른 북소리도 다 합한게 이 세상이니까요. 빠져있는 소리,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그것을 메우는 악기가 더 당기네요. ㅎㅎ

오케스트라는 공동체에서 여럿이 각자의 악기로 함께하는 연주일수도 있고 개인의 삶에서 다양한 관심을 가짐으로 성립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쨋든 삶이든 공동체든 전인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지향할 때 구원이 더 의미있는 것 같아요. 성경보고 기도만 하거나 정의롭지만 메마른 하나님 나라에 머문다면 저에게는 구원된 삶이나 하나님 나라로 보이지 않아서요.

권사님의 사랑의 딴지는 늘 환영하겠습니다.
장승희 18-09-01 09:41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져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간구합니다.
최종국 18-09-01 21:20
 
문명의 혜택과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점점 더 빈곤해져 가는 마음을 해결할 방법은 나눔에 있습니다. 많이 가지려는 욕심은 더 깊은 소유의 갈증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나눌 때 내 소유의 만족과 함께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이웃과 하나됨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나눔이 있다면 오늘 실천함으로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배상필 18-09-02 00:32
 
32.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됐습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가진 것을 모두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33.  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에 대해 증거했고 풍성한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했습니다.
34.  그들 가운데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따금씩 땅이나 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돈을 가져다가
34 There was not a needy person among them, for as many as owned lands or houses sold them and brought the proceeds of what was sold.[NRSV]
35.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습니다. 그러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었기 때문입니다.

34절에 '이따금씩' 땅이나 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 공동체에 내어 놓았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보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들이 종말이 임박하기에 돈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당시에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가 극심했고, 가난이 만연했기에 교회 안에 있는 수 많은 절대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유한 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32절에 믿는 모든 사람들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구절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장에 보면 이 초대교회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나오는데 아마도 사회에 만연된 가난의 문제를 교회에서 해결하는 모습이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는데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있는 문제를 세상이 해결할 수 없는데, 그것을 교회가 해결할 때 세상은 교회를 칭송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혜로 풍성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언덕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해져서, 언덕교회가 세상의 문제를 치유하고,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교회로 서길 기도합니다.
강성희 18-09-02 00:40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판단과 행동의 근거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에 두는 것.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