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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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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4 06:34
[우리말성경]- 사도행전 (Acts) 7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106  

제7장


스데반이 공회에서 설교함

1.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사람들이 고소한 이 내용들이 사실이냐?”라고 물었습니다.
2.  이 말에 대해 스데반이 대답했습니다. “형제들이여, 그리고 어르신들,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살기 전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3.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12:1
4.  그래서 아브라함은 갈대아 땅을 떠나 하란에 가서 살았습니다. 거기서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아브라함을 보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손바닥 만한 땅도 아브라함에게 유산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와 그 씨가 이후에 그 땅을 갖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후손이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나그네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예가 돼 400년 동안 혹사당할 것이다.
7.  그러나 그들이 노예로 섬기게 될 그 나라에 내가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그들이 그 땅에서 나와 이곳에서 나를 경배하게 될 것이다.’ 창15:13-14
8.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태어난 지 8일 만에 아들에게 할례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이삭은 야곱을 낳았고 야곱도 우리 열두 조상을 낳았습니다.
9.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요셉을 시기한 나머지 그를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셔서
10.  모든 어려움에서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집트 왕 바로의 총애를 받게 하셨습니다. 왕은 요셉을 총리로 삼아 이집트와 왕궁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11.  그때 이집트와 가나안 온 땅에 큰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심한 고통을 겪게 됐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12.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우리 조상들을 처음으로 그곳에 보냈습니다.
13.  그들이 이집트에 두 번째로 갔을 때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밝혔으며 바로도 요셉의 가족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14.  이 일 후에 요셉은 사람을 보내 아버지 야곱과 모든 친족까지 합해 75명을 불렀습니다.
15.  그리하여 야곱은 이집트로 내려가게 됐으며 그와 우리 조상들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16.  그 후에 그들의 시신은 세겜으로 옮겨져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 무덤은 과거에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하몰의 자손들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사 둔 것이었습니다.
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실 때가 가까워지자 이집트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18.  한편 그때 요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왕이 이집트의 통치자가 됐습니다.
19.  그는 우리 민족을 속여 이용해 먹었고 우리 조상들을 괴롭히며 그들의 갓난아기들을 강제로 내다 버려 죽게 했습니다.
20.  이때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남달리 아름다웠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세 달 동안 그를 집에 숨기면서 기르다가
21.  어쩔 수 없이 밖에 버리게 됐는데 이때 바로의 딸이 그를 주워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키웠습니다.
22.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이 가진 모든 지혜를 배웠고 그의 말과 행동에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23.  모세가 마흔 살이 되자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24.  모세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그 편을 들러 갔다가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이고 원수를 갚아 주었습니다.
25.  모세는 자기 동족만큼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그들을 구원내실 것을 깨닫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26.  그 다음날 모세는 서로 싸우고 있는 두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가가 화해시킬 생각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당신들은 같은 형제들인데 어째서 다투고 있단 말입니까?’
27.  그러자 싸움을 걸었던 사람모세를 밀치며 말했습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나 재판관으로 세웠소?
28.  당신이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는 것이오?’
29.  모세가 이 말을 듣자 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는 거기서 나그네 생활을 하며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30.  40년이 지난 후 한 천사가 시내 산 근처 광야에서 타오르는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31.  모세는 이 광경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가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주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에 모세는 두려워 떨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출3:6
33.  그때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출3:5;출3:7-8;출3:10
34.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억압당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왔다. 자 이제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낼 것이다.’
35.  이 사람이스라엘 백성이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나 재판관으로 세웠소?’라면서 거부하던 사람인데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나타났던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와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36.  모세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면서 이집트와 홍해 앞에서 그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기적들과 표적들을 행했습니다.
37.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너희 백성 가운데 나 같은 예언자를 보낼 것이다’라고 한 사람이 바로 이 모세입니다. 신18:15
38.  그는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함께 우리 조상들과 더불어 광야 교회에 있으면서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39.  그러나 우리 조상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거절하며 그 마음으로 이집트로 돌아갈 생각을 했습니다.
40.  그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어 주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모세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출32:1
41.  그리고 그들이 송아지를 본떠 우상을 만든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들은 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했습니다.
4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돌아서시고 그들이 하늘의 별들을 섬기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책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너희가 40년 동안 광야에 있을 때 내게 희생과 제물을 가져온 적이 있었느냐?
43.  너희는 너희가 숭배하려고 만든 몰록천막과 너희 신 레판의 별을 높이 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바벨론 저편으로 옮길 것이다.’ 암5:25-27
44.  우리 조상은 광야에서 증거의 장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대로 그가 본 양식에 따라 그대로 만든 것입니다.
45.  우리 조상들은 이 장막을 물려받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땅을 차지할 때도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그 장막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은 다윗의 시대까지 그 땅에 있었습니다.
46.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사람으로 야곱의 집안을 위해 하나님의 처소를 짓게 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47.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은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언자가 한 말과 같습니다.
49.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내 보좌이고 땅이 내 발판이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겠느냐? 또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 있겠느냐?
50.  이 모든 것을 다 내 손으로 만들지 않았느냐?’ 사66:1-2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가 꽉 막힌 사람들이여, 당신들도 여러분의 조상처럼 계속해서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52.  당신들의 조상이 핍박하지 않은 예언자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심지어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는 당신들도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53.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해 준 율법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스데반을 보며 이를 갈았습니다.
55.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해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 계신 것을 보고
56.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57.  그러자 그들은 귀를 막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낸 후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목격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59.  그들이 돌로 칠 때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60.  그러고 나서 스데반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여,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을 끝낸 후 그는 잠들었습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김영균 18-09-04 09:34
 
스데반의 사건 역시 많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이번엔 의심이 아니고 의문입니다. ㅎ)
일단 이것을 ‘싸움’이라고 하자면 이 싸움은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의 싸움입니다.
어제 배집사님 댓글에 의하면 스데반도 헬라파 유대인이겠죠. 그런데 스데반은
 초대교회의 집사였던 거고 스데반과 변론하다 스데반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6장 9절의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등등의 유대인들은
아마도 초대교회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 의문 : 도대체 그들이 스데반과 더불어 한 변론의 내용이 무엇일까?입니다.
유감스럽게 사도행전은 이 논쟁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꼬집어 얘기하지 않고
있네요.

둘째 의문 : 스데반이 열 두 사도의 신임과 지지를 얻는 사람이었다면 공회에서라도
초대교회의 영향력을 이용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도들이 스데반을 구
해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셋째 의문 : 고소에 내몰려 대제사장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해야하는 입장에 처한
스데반은 아브라함부터 솔로몬 때까지 구약의 스토리를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스토리를 되풀이하는 스데반의 변론은 그가 뛰어난 변론가로 소개된 만큼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말하고 싶은 요점에 비해 너무 장황하고 그래서 요점을
놓치게 됩니다. 스데반이 하고 싶은 얘기의 요지가 무엇인지 포착되는 분, 요지가
포착된다면 그 요지를 위해서 아브라함 때부터 솔로몬의 이야기까지 장황하게 할
필요가 있는 요지였는지 이해되는 분 있다면 나눔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김희병 18-09-04 16:36
 
1. 첫째 질문에 대한 생각 : 스테반은 지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다고 서술된 바로 보면 성경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커서 아마도 비록 집사의 직분을 맡고 있지만 사도들 만큼의 역할을 수행한거로 보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성경에서 그렇게 암시하는 메시아로 인식한 스테반에게는 더이상 구약의 율법이 의미가 상실된 것이어서..구약 율법이 삶을 지배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격렬하게 대립되었던 거 아닐까요 ?

2. 둘째 질문에 대한 생각 : 그 정도까지 초대 구성원들의 힘과 영항력이 조직적이지 못할 개연성이 있어 보입니다.

3. 세째 질문에 대한 생각 : 첫째 질문과 대한 생각과 관련되는데..구약 토라에서부터 여러 예언서를 관통하는 기름부은 자에 대한 메세지가 예수임을 확신하고 있다면 이를 설명하려니 장황하게 나열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절묘하게도 다니엘이 본 환상에서 70이레의 끝이 스테반이 순교한 AD34년이라 하네요.

평신도 운동의 선구자인 스테반을 보면, 사도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소명자가 될 수 있음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 집니다.
          
김영균 18-09-04 18:54
 
김희병 친구집사님! 반가워요~.
제가 변론내용이 궁금했던 이유는 스데반을 걸고 넘어졌던 사람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철학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사도행전에서는 이들이 히브리파 유대인처럼 성경과 율법에 대해서 굉장히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수호자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는 기독교가 없을 때니까 편의를 위해  초대교회의 종교를 예수교라고 호칭하기로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민족만 같을 뿐이지 예수교와 유대교는 완전히 다른 두 종교라고
볼 수 있는데 다른 두 종교 간에는 논쟁 자체가 성립되기가 어렵다고 보입니다. 보수적인 두 종교는
서로 외면하고 반목하지 논쟁하려들지 않죠. 논쟁을 성립시킬 수 있는 사람이 바울이나
요한복음 저자인데 그 이유는 기독교에 헬라철학의 틀을 입혀 재구성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철학이 접목되면 논쟁할 수 있는 거리가 무한대로 늘어나죠.
하지만 사도행전 말씀에서 보면 고발한 측도 스데반도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입니다.
서로 자기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어도 젔다고 인정하지 않는게 보수의 특징인데 고소인측
헬라파 유대인들이 논쟁에서 져서 앙심을 품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게 좀 의아해서요.
     
배상필 18-09-04 18:02
 
둘째 의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저도 김희병 집사님의 생각처럼 초대교회의 영향력이 그 사회에서 미미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사도행전에 초대교회의 영향력이 사회에 컸던 것처럼 나오는데(5:14, 6:7, 21:20 등) 이것을 문자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남자의 수만 약 오천이라고 (행 4:4) 나와 있는데 이것도 수학적으로 사실로 보기보다 수사적 표현 - 많아졌다는 의미 - 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남자만 오천이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최소한 2만명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1세기 당시 예루살렘 지역의 총 인구 수가 2만 ~ 4만명 정도였다고 추산을 합니다. (http://overspins56.rssing.com/browser.php?indx=25043178&item=20)

그리고, 사법적 결정권이 있는 산헤드린 공회원이 아마도 71명이었다고 추산을 하는데 이중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은 성경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두명만 나옵니다. 대다수는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유대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김영균 18-09-04 19:51
 
제가 스데반 고발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스데반의 믿음은 당시 초대교인들의 믿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 이 믿음의 진술로 인해 공회에서 ‘사형선고’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인들 모두가 같은 심판대에 오를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니까요.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때가 바울의 개종직전이기 때문에 대략 A.D 40년 경이라고 보면 이 때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로마가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치통치에서 직접 통치로 이미 바꾸어 통치하고 있던 때인 것 같습니다. 자치 통치제 하이던 예수님 죽임 당시도 유대의 왕인 헤롯만으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고 로마총독 빌라도의 판결이 필요했는데 직접 통치제이던 스데반 고발 사건 당시에는 더더우기 대제사장들의 판결 만으로는 사형 집행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하면서 이 위험한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도 스데반을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배집사님의 댓글에서는 단 두 사람의 제사장만 예수교 편인 것으로 보인다고 되어 있구요.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책들은 왜 이렇게 진실 논쟁을 할 거리가 많게 기록되었을까요?

스데반이 대제사장 앞에서 진술한 변론 내용도 저에게는 여전히 무엇을 위해서 그런 진술을 했는지, 죽음을 앞둔 진술치고는 뭔가 흐릿해 보입니다. 죽음을 피하고자 했다면 자신이 고소당한 내용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변론했어야 하며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유대교인들에게 새로운 예수교의 메시지를 전도하고자 했다면 예수에 대한 메시지가 더 선명했어야 할 것 같은데 사도행전 기록에서 스데반의 메시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으로 읽힙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예수님이나 스데반이 아니라 그 분들에 대한 기록의 신빙성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최초에 형성될 때 그 기초는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성경의 기록들은 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의 초점을 어디서부터 다시 잡아야할지 그게 요즈음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고민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배상필 18-09-05 16:56
 
저도 집사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사실(역사적, 과학적)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이 권위가 있고 우리의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기록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많은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경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면서 특히나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저의 과제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 학기에 전에 제가 다니던 학교에 마침 성경 해석학 강의가 개설이 되어서 청강을 하기로 했습니다. 불완전한 성경 본문 속에 담겨 있는 온전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는 일을 즐겁고, 보람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
               
강성희 18-09-07 07:28
 
우리의 믿음이 최초에 형성될 때 그 기초는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으니까요.

질문도, 의심도, 의문도 알아야 가능한데 동참할 수 없는 저의 무식과 무지가 안타까운 요즘입니다. 제게 믿음은 그냥 찾아왔어요. 어린 어느날, 숫기 없던 제가 교회에 처음 가서 (누구의 인도나 전도도 아니었던게 지금도 신기하지만...기억의 왜곡일지도 모르겠고...) 얌전히 앉아있던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던 안 다니던, 성경을 읽던 안 읽던, 제 공식 서류상 종교란에는 기독교로 기재되었지요. (스스로도 찔려서는 사이비 기독교인이라고 떠들었지만 믿고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것은 부끄럽게도 이 '성경 읽기와 기도 나눔'에 동참하면서부터입니다. 일여년 지난 지금, 아직도 사방이 안갯속이지만 분명한건 알기 때문에 믿은게 아니라는거죠.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여진 책이라는 믿음으로 믿음이 시작되는거라면 저는 평생 주님을 믿을 시간을 만나지 못 했을거예요.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 문화 역사 사회적 배경을 무시하지 못한 가미된 저술 부분도 있다는 점 다 인정하고 목적을 위한 왜곡된 해석을 걱정하면서도 그것이 믿음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느껴지니 정말 무지 무식한 자이지요~
지나가다 숲은 안 보고 나무 한 그루만 보고는 한마디 얹어봤습니다~ 이제 숲이 더 아름다워질 계절이 성큼 다가왔네요~
장승희 18-09-04 13:52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가 꽉 막힌 사람들이여, 당신들도 여러분의 조상처럼 계속해서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52.  당신들의 조상이 핍박하지 않은 예언자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심지어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는 당신들도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53.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해 준 율법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분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대중들이 말하는 생각과 가치관들이 정말 옳은가?

주님, 겸손한 마음으로 나를 내려놓습니다.
내 안에 꽉채워진 모든 것을 주 발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
그것이 가장 어렵기에 당신의 도움심을 구합니다.
최종국 18-09-04 15:40
 
우리의 구원은 사람의 의, 혈통적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모세를 거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이 자랑하고 의지하는 혈통적 의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에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기 바랍니다.
배상필 18-09-04 17:15
 
34.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억압당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왔다. 자 이제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낼 것이다.

억압당하는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내려왔다고 하네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군림하고 대접받기 원하는 그런 신이 아니라,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분이시네요. 이것이 진정한 복음인 것 같습니다. '구원'의 문제도 영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를 포함해서 그 사람이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나서 전인이 회복되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