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 HOME
  • LOGIN
  • JOIN
  • SITEMAP

커뮤니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temp

 
작성일 : 18-09-08 06:24
[우리말성경]- 사도행전 (Acts) 11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85  

제11장


베드로가 간증함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받은 신자들이 그를 비난하며
3.  “당신이 어떻게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소?” 라고 물었습니다.
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그 일의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5.  “내가 욥바에서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게 네 귀퉁이가 묶인 채로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들여다보니 네 발 달린 땅의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습니다.
7.  그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소리가 내게 들렸습니다.
8.  그러나 나는 ‘말도 안 됩니다. 주님, 불결하거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9.  그런데 하늘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불결하다고 하지 마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0.  이런 일이 세 번 일어난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 가이사랴에서 나를 부르러 온 세 사람이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찾아왔습니다.
12.  그리고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가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이 여섯 명의 형제들도 나와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13.  고넬료는 자기 집에 천사가 나타나서 ‘욥바사람을 보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찾아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을 구원말씀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15.  내가 말을 시작하자 성령이 처음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려오셨습니다.
16.  그때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 주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바로 그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하나님을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허락하신 것이로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창립과 부흥

19.  그 무렵 스데반의 일로 인해 핍박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페니키아, 키프로스 그리고 안디옥까지 건너가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20.  그런데 그 가운데 키프로스와 구레네 출신인 몇 사람안디옥으로 들어가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22.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전해지자 그들은 바나바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23.  바나바안디옥에 도착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온 마음을 다해 주께 끝까지 충성하라고 그들 모두를 격려했습니다.
24.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오게 됐습니다.
25.  그리고 바나바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사울은 1년 내내 그곳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27.  이 기간 동안 몇몇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왔습니다.
28.  그들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일어나 로마 전역에 심한 기근이 들 것이라고 성령으로 예언했습니다. (이 일은 글라우디오 황제가 다스리는 때 일어났습니다.)
29.  제자들은 각자 자기 형편에 따라 유대에 살고 있는 형제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30.  그들은 이렇게 해서 모은 헌금을 바나바사울 편으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이경숙 18-09-08 06:37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와 사울은 1년 내내 그곳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바나바 (위로의 아들)......구브로의 요셉, 이름보다 별명이 그의 됨됨이를 표현해 주네요.
김영균 18-09-08 08:30
 
성과 속, 그리고 죄...

죄란 무엇일까?
사자가 연약한 사슴을 잡아먹을 때 우리는 사자가 죄를 짓는다고 하지 않는다. 사자끼리 서열싸움을 할 때, 그래서 서로에게 상해를 입힐 때도 우리는 사자가 죄를 짓는다고 하지 않는다. 사자 무리의 리더가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배불리 먹을 때도 우리는 그 사자를 죄로 평가하지 않는다. 여러 암컷을 취할 때도 죄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여 잡아먹을 때도 죄라고 하지 않는다. 사자의 그런 기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생명체에게 준 기질 자체를 죄로 보지 않는다.

사람은 다를까? 사람도 한편으로 동물들과 똑같은 기질, 본능을갖고 있다. 그로 인해 연약한 자의 것을 뺏는다. 남의 것을 도적질한다. 이성을 보면 취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강제로 취한다.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 죄라고 판단할까? 죄라면 왜 동물에게는 죄가 아닌데 사람에게는 죄일까?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 본능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양심이 있고 없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피해자가 있다. 죄를 규정하는 데는 피해자의 유무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동물의 세계야말로 우리처럼 똑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인 피해자들이 매일 무수히 발생한다. 아니 피해자들이 있어야지만 그들의 세계가 유지된다.
왜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만드셨을까?
피해자가 있게 한 사람이 죄인이라면 사람의 경우에는 양심으로 제어라도 할 수 있다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그 가해자는 동물들의 세계를 그렇게 창조한 하나님 자신이 아닌가? 설령 동물에게도 양심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자는 사슴을 잡아먹어야하지 않는가? 피해자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예수님이 왜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죄없다 하노라라고 할 수 있었을까? 용서하노라가 아니라 없다고 했을까? 죄는 이 세상의 필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이 생명체에게 준 기질과 하나님이 만든 세상의 구조(약육강식,자원의 한정)의 필연이다. 하나님은 우리만큼 죄에 민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죄란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갖고 있거나  인간에게 주신 개념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인간사회를 보호하고 질서를 잡아가기 위해 만든 개념이지 않을까?. 그것은 양심에 선행하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지적 능력에서 비롯되어 만들어진 개념이 아닐까? 그 죄라는 개념이 인간사회에 계속 전해 내려오면서 양심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인간의 유전자에 더해진 것 아닐까?

따라서 하나님 앞에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한다든지 죄를 젔으면 대속이 필요하다든지 하는 개념도 결국은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나님이 아닌....

죄도 그럴진대 ‘속‘은 더더욱이 인간 머리에서 나온 개념이 아닐까? 오늘 말씀에서 보듯.....

p.s : 저더러 해도 너무한다고 비난하고 싶은 교우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장난거리로 질문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생을 걸고 고민하고 질문하는 중입니다. 내 인생에 무언가를 가장 진지하고열심히 해보는 중인데 그게 바로 '하나님은,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이제 어릴때처럼 무조건 받아들이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제 머릿속에 인지부조화의 하나님이 아닌 인지일치의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그러려면 하나님에 대한 '다시보기‘와 재해석 작업이 필요하다 보여집니다. 후반부의 내 인생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저 김영균의 하나님.....
각자가 보고 경험한 하나님이 조금씩 달라서 성경에서도 이렇게 따로 지칭해 말헀겠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합한 하나님도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저의 하나님을 찾고 만나면 좋겠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받아주는 언덕교회가 고맙지만 한편으로 많은 교우들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저도.힘들지만 로마서까지 가보고 그 다음에는 전처럼 조용히 있을 생각입니다.
     
배상필 18-09-08 13:16
 
김영균 집사님 귀한 글 감사합니다. 집사님의 글 재미있게 읽고 있고, 집사님의 글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 참 귀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귀하게 여기실 것 같구요. 집사님의 하나님을 빨리 찾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평생의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좀 길게보시면 좋겠습니다. 로마서까지 말고, 적어도 성경 한바퀴는 돌아야 하지 않을까요 ^^  그러고, 언덕의 누구도 집사님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도 같이 비난을 받겠습니다 ^^;
          
김영균 18-09-08 22:57
 
저의 응원군.... 아니면 보호자 ㅎ.... 배짐사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의 글을 뒤집어 읽으면 우리가 믿는 믿음대로라면 하나님을 가해자요 죄인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천지와 세상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그 일체를 주관하신다는 것은 고대인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많은 모순을 갖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이렇게 불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모순이고....
사랑의 하나님이 이렇게 부조리와 고통 가득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모순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절대적 주권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 모순 많은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도 모순입니다. 나라에 문제가 있는데 거기에 절대적 주권을 가진 통치자가 있다면 그 문제의 책임을 현대인들은 절대적 주권자에게 전가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 주권자로 고백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세월호 문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지요.

고대인의 신앙고백은 고대인들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겠지만 현대에 와서 보면 이렇게 많은 모순점들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대에 끝났습니다. 이삭에게는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에게는 야곱의 하나님이 있었던 거죠. 우리는 고대인의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하나님, 현대인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한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제가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이유는 예수님의 사상이 현대인들도 감당하기 힘든 진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거나 모든 시대에 걸쳐 통하는 이상성을 가진 사상이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사상에서 오늘의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진보성과 이상성은 다 걸러내 버리고 창세기와 구약성경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들만 수천년 묵은 함에 담아 진리라고 부르죠. 고대에는 살아 있었으나 지금은 사용연한이 지나 현대인들에게는 통할 수 없는 진리를요.

저도 하나님을 가해자요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저의 믿음과 하나님 인식을 수정하고 말지요.
               
이승조 18-09-09 08:24
 
집사님의 치열한 문제의식은 좋은 자극이 됩니다. 힘내서 한바퀴 끝까지~
최종국 18-09-08 09:09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하나님은 원하는 일을 한다.
배상필 18-09-08 13:07
 
22.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전해지자 그들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24.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오게 됐습니다.
25.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와 사울은 1년 내내 그곳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신뢰받는 지도자였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초대교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이 주님을 믿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하기 위해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울이 회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세워주기 위해서 다소에서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온 듯 합니다. 사도행전 뒷부분에는 바울의 뒤에서 2인자로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바나바를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표현을 하고 있네요.

착하다는 말은 그리스어로는 ἀγαθὸς (agathos)이고, 본성이 착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외에 '선한' 분이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을 묘사하는 용도로도 사용이 되었네요. 참 훌륭한, 신앙인의 본이 될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본성이 착하지는 않지만 바나바를 배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강성희 18-09-08 23:53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바로 그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하나님을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허락하신 것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