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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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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14 06:48
[우리말성경]- 사도행전 (Acts) 17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150  

제17장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전도함

1.  바울과 실라암비볼리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는 유대 사람회당이 있었습니다.
2.  바울은 늘 하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3주 동안 안식일마다 성경에 대해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3.  그리스도고난을 받은 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했던 것을 설명하고 증명하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십니다”라고 전했습니다.
4.  몇몇 유대 사람들은 그 말에 설득돼 바울과 실라를 따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그리스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들의 말을 믿게 됐습니다.
5.  그러자 유대 사람들에게 시기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시장의 불량배들을 끌어모아 떼를 지어 도시 안에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찾아 사람들 앞에 끌어내려고 야손의 집으로 쳐들어갔습니다.
6.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다른 형제들을 그 도시관원들 앞에 끌고 와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세상을 온통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도 왔는데
7.  야손이 그들을 자기 집에 들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이사의 칙령을 거역하며 예수라는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합니다.”
8.  이 말을 듣고 사람들과 그 도시의 당국자들은 당황했습니다.
9.  그러나 당국자들은 야손과 다른 신자들로부터 보석금을 받고 그들을 놓아주었습니다.
10.  밤이 되자마자 형제들은 바울과 실라베뢰아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도착하자 유대 사람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11.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어서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바울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12.  그래서 그들 가운데 많은 유대 사람들이 믿게 됐고 적지 않은 그리스 귀부인들과 많은 그리스 남자들도 믿게 됐습니다.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 사람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 또 나타나 사람들을 선동해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14.  그러자 형제들은 즉시 바울을 바닷가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실라디모데베뢰아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15.  바울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했습니다. 그들은 실라디모데도 속히 자기에게 데려오라는 바울의 지시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아테네에서 전도함

16.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그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매우 격분했습니다.
17.  그래서 그는 회당에서는 유대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 사람들과 또 시장에 나가서 날마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18.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변론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외국의 다른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바울이 예수와 그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  그때 그들은 바울을 붙들어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데려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소개하고 있는 이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20.  당신이 우리 귀에 생소한 것들을 전하니 우리가 그 뜻을 좀 알고 싶습니다.”
21.  모든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 사는 외국 사람들은 보다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듣는 일에 시간을 쏟던 사람들이었습니다.
22.  그러자 바울이 아레오바고 광장 가운데 서서 말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이여! 내가 보니 여러분은 여러모로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
23.  내가 두루 다니면서 여러분이 무엇을 섬기는지 자세히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게 됐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예배해 온 그 신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24.  그 신은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들 안에 살지 않으십니다.
25.  하나님께서는 뭔가 부족해서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다른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6.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민족을 만들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셨고 각 나라의 연대를 미리 정하시고 그들의 국경도 정해 주셨습니다.
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과 그리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9.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이상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이나 기술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 새겨 만든 형상 따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30.  알지 못했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셨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운 한 사람을 통해 세상공의로 심판할 날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날에 대한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32.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 이야기에 대해 다시 듣고 싶소”라고 말했습니다.
33.  그러자 바울은 그들로부터 나왔습니다.
34.  그때 몇 사람들은 바울을 따르며 믿게 됐습니다. 그 가운데는 디오누시오라는 아레오바고 시회 의원과 다마리라는 여인과 그 외에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출처:GOODTV 성경읽기]


최종국 18-09-14 07:21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변론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그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 염려하기보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의 시앗을 나눌지 고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더욱 긍휼한 마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나누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경숙 18-09-14 07:52
 
몇몇 유대 사람들은 그 말에 설득돼 바울과 실라를 따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그리스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들의 말을 믿게 됐습니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야손과 다른 신자들로부터 보석금을 받고 그들을 놓아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해박한 바울의 교묘한 말 장난........
장승희 18-09-14 08:59
 
29.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이상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이나 기술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 새겨 만든 형상 따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30.  알지 못했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셨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운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할 날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날에 대한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32.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 이야기에 대해 다시 듣고 싶소”라고 말했습니다.


나와 상관있거나 상관없거나...
선택은 나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비웃는 인생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강성희 18-09-14 12:23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과 그리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숨결과 손길 속에서 존재하는 나! 이 얼마나 감격스런 깨달음인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영균 18-09-14 12:47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소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더듬어 찾아 발견하는 하나님!
제게는 참 마음 깊이 와닿는 표현입니다.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싱싱하게 빛나는 풀잎에서...
매일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가을 하늘에서...
저는 하나님을 더듬어 만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수록 하나님을 모르는 티를 내는 것 밖에 안 될 겁니다.
우리가 사는 차원의 언어로 하나님을 명백히 표현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부조리한 신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완전한 화가는 완전한 그림을 그립니다.
완벽한 도공은 완벽한 도자기를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 논리 상의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화가란 무엇입니까?
완벽한 그림이란 또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논리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다는 개념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전지전능하시다는 개념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신 분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부조리의 근원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모순 많은 세상을 창조하셨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화가의 숨결을 더듬듯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서 향유하고 그 아름다움을 창조한 화가를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 종교의 의미는 그것입니다.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하는 것!

구약시대에는 무서운 신, 벌 주는 신을 상상했습니다. 노아와 바벨탑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만 한다면 인간을 벌하지 않고 보호해주는 신을 상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만 사랑하는 편애의 하나님이란 인식적 한계도 있죠.
그 다음에 사람들은  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신을 상상했습니다.
잘 보면 인간이 신에 대해 갖는 개념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신에 대한 개념이 진보할수록 인간사회도 더 좋은 쪽으로 진보합니다.
법은 인간 사회에 너무나 유익하지만 기득권층의 보호와 이익에 더 치우친 면이 있습니다.
법의 그늘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만들게 마련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준법의 신을 넘어 법의 그늘에 있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사랑의 신’을 상상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아울러 멀리 하늘에 있는 신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거주하는 신을 상상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신 개념에 대한 인간 이해의 진보,
좋은 신에 대한 인간 상상의 진보.
이것이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성경의 스토리로 제게는 보입니다.
상상은 더듬는 것입니다.
유추하여 자기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논리로 정의하여 또렷하게 남에게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사람만이 아름다운 신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만이 좋은 신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 신을 상상하는 사람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좋은 신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신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좋은 인간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게 종교의 의미는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좋은 신을 상상하되 매일 그 상상을 엎데이트할 수 있으려면 지적인 통찰력을 매일 개발해야 합니다. 내 안에 거주하는 아름다운 신을 느끼되 더 깊이 느끼려면 늘 나의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관리해야 합니다. 신을 더 가까이 느끼려면 내 마음과 신의 마음 사이에 거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 신은 상상 속의 존재로 끝나지 않고 내 안에 실체가 되어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상이 '바로 나'를 신에 가까운 실체로 만들어 갑니다. 나를 보면 신을 보는 것 같게 됩니다. 그걸 가장 먼저 깨닫고 자기 안에 이루신 분이 제게는 '예수'란 분이십니다.

완전한 신, 설명할 수 있는 신을 상정해 놓고 종교의 교리를 만들어 나가면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하여 논리상의 허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바보나 변덕장이나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게 됩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신을 완전하다 정의하고 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교리는 제게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노력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신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 진보해가는 과정을 발견하고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 상상이 실체로 변한 것을 봅니다. 마치 큰 바위 얼굴의 이야기처럼요.

우리 또한 예수님을 스승이자 모델로 더 아름다운 신을 상상할 수 있기 위해,,,
우리 시대의 많은 문제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더 좋은 신을  상상활 수 있기 위해...
내 자신이 더 아름다운 사람, 좋은 사람으로 매일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제가 더듬어 만난 하나님, 더듬어 만난 종교의 의미입니다.
이것말고 더 얻어야할 것이 있을까요?
배상필 18-09-14 17:30
 
24.  그 신은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들 안에 살지 않으십니다.
25.  하나님께서는 뭔가 부족해서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다른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 사람들의 종교성을 매개로 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은 웅장한 신전을 바라보면서, 그리스의 신들과 대비해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천지)을 만드신 분이고, 인간이 만든 신전에 가두어 둘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고, 인간의 섬김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고 모세에게 표현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인간에게 무엇을 받아야 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필요한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교만과 무지에서 나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엇인가 결핍된 신으로 만드는 것이고, 하나님을 불완전한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피조세계를 보전하면서 겸손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