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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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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29 06:25
[우리말성경]- 로마서(Romans) 4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171  

4장


아브라함의 믿음

1.  그러면 우리가 육신에 따라 우리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고 합니다. 창15:6
4.  일하는 자에게는 품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정당한 대가로 여겨지나
5.  일하지 않고도 경건치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집니다.
6.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의 복에 대해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7.  “주께서 불법을 용서하시고 죄를 덮어 주시는 사람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않으실 사람은 복이 있다.” 시32:1-2
9.  그러면 이 복은 할례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고 했습니다.
10.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의로 여겨졌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때입니까?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은 때입니까? 할례를 받은 때가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은 때입니다.
11.  그가 할례의 표식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때에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할례받지 않은 사람으로서 믿는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돼 그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는 또한 할례받은 사람의 조상이 됐습니다. 곧 할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은 때에 가졌던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습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상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율법으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인해 된 것입니다.
14.  만일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효가 되고 약속은 파기됐을 것입니다.
15.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함도 없습니다.
16.  그러므로 약속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 곧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도 은혜로 이 약속을 보장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기록되기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조상이 됐습니다. 창17:5
18.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소망을 갖고 믿었습니다.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15:5
19.  아브라함은 100세나 돼 이미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고 도리어 믿음이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22.  그러므로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창15:6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24.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도 위한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를 인해 죽음에 넘겨지셨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최종국 18-09-29 06:4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자신의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앞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본토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고, 믿음으로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 들였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영균 18-09-29 13:26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은 것은 행위(율법)나 할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서였다고 바울은 주장하고 있네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최초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그를 의롭게 여기신 것은 할례를 받기 이전부터 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아브라함때는 율법이라는 개념도 주어지기 전이구요. 따라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아무런 계약이나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을때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때부터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다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에 앞서 의롭다함을 취득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또 어떤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원래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수메르문명권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수메르문명권이 믿던 신은 농사의 신 바알과 다산의 여신 (누구누구)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두 신은 모두 인간의 원초적인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잘먹고 잘살고 싶은 바람에서 이런 신들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겠죠.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새로운 신의 소리를 듣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운 신을 그의 마음 속에서 상상하고 만납니다. 그것은기존의 신에 대한 회의와 의심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기존의 두 신의 특징은 모두 정착의 신이라는 점입니다. 태어난 땅에서 태어난 모습.그대로 잘먹고 잘살기를 비는 대상으로서의 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새로 만난 신은 유랑의 신이었습니다. 안정되게 정착한 곳에서 불러내는 신이었습니다. 가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로 불러들이는 진보의 신이었습니다. 단지 복과 보호를 통해서 지금의 자리를 지켜주는 신이 아니라 삶에 목표와 비전을 부여하고 삶의 이정표가 돠어주어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주는 새로운 차원의 신이었습니다. 복의 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신들과 완전히 다른 신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의 머리 속에서 신의 개념과 복의 개념 모두 진보하고 있었던 겁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가존의 신들과 똑같지 않은 새로운 신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그랬기에 그 새로운 신에 대한 자기 자신 속의 확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쨋든 아브라함은 그 새로운 신을 마음 속에 모시고 믿고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 결단의 징표로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에게 할례의식을 행합니다. 곧 과거의 신 들 대신에 새로운 신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여기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의리'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새로운 신을 믿고 모험과 도전을 감내하는 만큼 신도 상응하는 의리를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새로 만난 신은 인간과 대화하는 신이기도 했습니다. 일방적이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는 신이 아니라 소돈과 고모라사건을 통해서 보듯 인간과 대화하며 조율하는 신이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축복하는 바알신이나 다산의 신으로부터 얼마나 진보한 신을 아브라함은 만난 것입니까? 얼마나 인간의 삶과 역사를 이롭게 발전시킬 신을 만난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믿음과 의리의 스토리는 이런 의미로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할례나 행위 대신에 믿음에 교리의 옷을 입히는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라고 할례나 행위와 뭐가 그렇게 다를까요? 믿어서 우리 삶에, 인간사회에  진정으로 도움이되고 유익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왜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게 인정해주는 기준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저는 이런 의심을 가지고 로마서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 이상으로 '하나님의 개념'을 진보사킨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새로운 하나님 개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정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겁니다. 이처럼 신을 어떻게 재해석해내냐는 것이, 어떤 신을 믿느냐가 중요한데 아브라함과 예수님같은 분들이 굳어버린 도그마를 해체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인간들은 늘 서둘러 새로운 도그마의 옷을 입혀야 편한가봅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은 진짜 하나님은 상대하기 힘드니까요.
본토친척아비 집에서 떠나 새로운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고 말하실까봐요.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할까봐요.

그리고 옷을 입혀놔야 하나님이 더 그럴듯해보이고 그걸 이용해 종교권력을 만들고 사람들을 그 안에 묶어두어서 이용하기도 쉬우니까요.

어쨋든 바울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하지.않고 더 읽어나가며 그의 전체적인 논지가 무엇인지 아해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배상필 18-09-29 13:52
 
17.  기록되기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조상이 됐습니다. 창17:5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the father of many nations”)—in the presence of the God in whom he believe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into existence the things that do not exist.[NRSV]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행위(works)와 상관없이 그의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불러서 있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99세까지 자녀가 없었는데 그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약속을 성취하셔서 오늘의 우리도 있게 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복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을 살 소망이 없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삶의 소망을 나누며 살아가야겠습니다. 할렐루야!
강성희 18-09-30 23:18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도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