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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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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30 06:40
[우리말성경]- 로마서(Romans) 5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71  

5장


평화와 기쁨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
2.  또한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합니다.
3.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5.  이 소망은 우리를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해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작정된 시기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7.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 과감히 죽는 사람은 간혹 있기는 합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에서 확실히 구원받을 것입니다.
10.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됐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인해 그분과 화목하게 됐으니 화목하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해 확실히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아담을 통한 죽음,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죄로 인해 죽음이 들어온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죽음이 왕 노릇했습니다.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입니다.
15.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사아담의 범죄와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선물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16.  또한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해 정죄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사는 많은 범죄로 인해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됩니다.
17.  아담사람의 범죄로 인해, 죽음이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왕 노릇했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처럼 한 분의 의로운 행동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19.  한 사람불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처럼 한 분의 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
21.  이것은 죄가 죽음 안에서 왕 노릇 한 것처럼 은혜도 의로 인해 왕 노릇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인해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최종국 18-09-30 06:51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때문에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제불능의 상황일 때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충만한 사랑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의로움이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었기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 찾아오는 문제들로 인해 소망을 잃고 근심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화복한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항상 즐거워합니다.(11절)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참된 기쁨을 누리는 하루가 됩시다.
김영균 18-09-30 12:58
 
바울은 헬라문화권에서 헬라철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철저하게 이원론적으로 세계를 규정하고
또 모든 것을 이원론적으로 풀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악마
죄와 벌
벌과 은혜
행위와 믿음

여기에 인과론도 더해져 그의 사상을 전개하는데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한다는.
한 사람이 잘못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답니다.
한 의인이 죽으면 모든 다른 사람도 의롭게 된답니다.
왜 한 사람과 다른 모든 사람 사이에 인과관계가 형성되는지 좀 어눌해 보이는 인과론이네요.

이원론에 갇힌 바울은 구원을 말하려면 반드시 멸망과 짝을 지어 말해야합니다.  빛과 어둠이
섞일 수 없이 개념 상 완전한 대척점에 위치하면서도 쌍을 이루는 것처럼  모든 이원론적 개념은
양 극단에서 완전한 경계를 이루며, 또 동시에 쌍을 이루고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완전한 구원이기
위해서는 이원론적 개념에서 인간의 멸망 또한 완전한 멸망이어야합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완전한 멸망.
이 완전한 멸망의 개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바울이 창안해낸 개념이 원죄입니다. 바울 아닌
다른 또 누가 원죄를 말했습니까? 구약에서, 아니면 예수님이, 아니면 제자들이...

바울은 제가 보기에 좋은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개념에 걸려 넘어져서 모든 인간에게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인류 최대의 실수, 또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 아니다'부터 구원의 이야기를 사작하십니다.
바울은 '죄인이다'부터 구원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에게도 죄인 개념이 있다면 바로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그 사람이 죄인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랍니다. 그가 이후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더라도 예수님이 앞에
계셨으면 일단 빰 한대 날리셨을 것 같습니다.
강성희 18-09-30 23:32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믿기'때문이 아니겠지요. '믿는다는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기에 믿음으로 화평을 누린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배상필 18-10-01 00:03
 
2.  또한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합니다.
3.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5.  이 소망은 우리를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해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동일하게 환난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기쁨으로 환난을 대합니다. 그 환난이 인내를 배우게 하고,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게 하고,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환난 가운데 우리가 그것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넘치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한 주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경험하고, 그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그 사랑의 능력을 나누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김영균 18-10-01 11:15
 
20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율법이 주어진 의미를 인간의 죄된 것을 더욱 분명히 밝히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율법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율법이 주어짐으로 아무도 그 그물을
빠져나갈수 없게되어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지 예수님의
구원이 더 선명하게 의로움을 드러내고 부각된다는 것이다. 곧 예수 이전의 모든 역사는
예수라는 한 지점을 향해서, 예수라는 한 분의 빛됨과 영광과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두움
으로 쓰였다는거다. 아담도, 율법도....

이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얼마나 참혹한 발상인가?
바울은 예수 한 분을 인류의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 그 전의 모든 역사와 인류의 삶을
부정하는 셈이다. 모든 과거는 그 당시의  현재적 의미없이 단지 미래의 한 지점, 예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했다는 것!

인류가 지금에 비해 미개한 사회였을 때 율법은 당시의 사회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율법은 오래 그 역할을 했다. 예수님도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바울은 율법의 실질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예수라는 빛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어두움으로서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도그마는 아무리 좋은 목적이 있더라도 위험해보인다.

거짓말을 해서 남에게 좋을 수는 았지만 그런다고 거짓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사람을 가둬놓아서 그 사람에게 좋을 수는 있지만 가둬놓는 것이 정당화될 수 았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