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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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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02 05:48
[우리말성경]- 로마서(Romans) 7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81  

7장


결혼 관계로 비유된 율법

1.  형제들이여, 내가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율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  결혼한 여자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으나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3.  그러므로 남편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간다면 간음한 여자라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다른 남자에게 가더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않습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에게 속해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율법으로 인한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속에서 작용해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죄와의 싸움

7.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에 비춰 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출20:17;신5:21
8.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내 안에 각종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
9.  전에 율법이 없었을 때는 내가 살아 있었지만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됐습니다.
11.  죄가 계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고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12.  그러므로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13.  그러면 선한 것이 내게 죽음을 가져다주었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죄가 죄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그 선한 것으로 내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계명으로 인해 죄가 더욱 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죄 아래 팔려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15.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16.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나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지금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안,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압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습니다.
19.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21.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22.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23.  내 지체 안에서 하나의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잡아가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김영균 18-10-02 10:17
 
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바울 사상의 가장 코어에 해당하는 구절인 것 같습니다.     
율법에 의존해 살던 구시대를 해체하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사는 새 시대를 열자는 것이죠. 
늘 율법을 내세우는 바리새인들과 맞서던 예수님을 연상시키며 바울이 예수님 사상의
계승자인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이 있어보입니다. 예수님은 이게 아니고 저거라고, 그리고 답을 abc로 로직
하게 설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새삼드는 생각인데 예수님이 늘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자신의 가르침이 도그마화되는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도그마는 abc로 설명하지만 비유는 abc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도그마는 그 자체가 틀이지만 비유는 틀 밖의 이야기입니다.

도그마는 늘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되기 마련입니다. 기독교의 도그마가 로마황제들에 의해
채택되어 중세역사가 1,000년의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된것처럼요.
오늘날, 바울이 도그마화한 믿음세트를 이용하여 한국사회에  천민기독교를 확산시키고 장사하여
자신들의 배와 명예욕만 충족사킨 한국 종교권력의 행태에서 볼 수 있듯이요.

만일 바울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그마로 변환시키지 않고 가르침 그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최소한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종교전쟁이나 종교재판, 마녀사냥은 피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믿음세트'를 마구 뿌려진 공짜선물인것처럼 착각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장식품인것처럼 목에 걸고다니지는 않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그마로 변환시킨 장본인 바울!
그의 논리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바울은 기존의 '법(로직)'을 해체하고 새로운 '법(로직)'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오직 비유의 언어로, 시의 언어로 말씀하셔서
로직에 갇히게 두지 않고 각 사람이 스스로 저마다의 답을 찾게하셨는데요. 바울은 모든 사람
에게 답은 단 하나 뿐이라고 제시한거죠. 예수님의 계승자같이 보이지만 예수님이 가장 싫어
하시는 방법론(이거 아니면 없다. 이거 라야만 된다)을 택한 바울은 계승자가 아니라 '변종'일 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동기가 어쨋든 역사는 에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도그마화한 바울의
시도가 실패한 것을 보여주는 것 같구요.
최종국 18-10-02 16:08
 
율법의 바른 목적은 내 죄를 고발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 가를 보게 하며, 나를 십자가로 달려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율법을 통해 나의 죄가 드러나지 않고는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죄가 드러난다는 것은 괴롭고 부끄럽지만, 이를 통해 십자가 앞에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죄인인 내가 예수님 덕분에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감하사며 나도 가족과 이웃, 주변 사람들을 율법이 아닌 은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루가 됩시다.
배상필 18-10-02 18:21
 
22.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23.  내 지체 안에서 하나의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잡아가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 안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지만 죄된 본성(sinful nature)이 더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고, 이것이 하나님을 따르려는 마음을 삼켜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무력함을 '비참한 사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법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했고, 이것이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신학이 나오게 된 배경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삶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름의 생각과 논리로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생각과 모습에 대해서 바울처럼 괴로워하는 영적 감수성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성희 18-10-02 21:54
 
2017년 1월 23일 처음 동참하면서, 한번도 빼먹지 않으리라 스스로와 한 약속 때문에 꾸역꾸역 이어오긴 했는데...나는 무얼 바라 여기에...
     
배상필 18-10-04 15:40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신실하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집사님의 신실함(믿음)을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