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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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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0 04:40
[우리말성경]- 고린도전서(1Corinthians) 9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87  

9장


사도의 권리

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까? 주 안에서 행한 내 일의 열매가 여러분이 아닙니까?
2.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내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기 때문입니다.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라고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이나 게바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습니까?
6.  또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까?
7.  누가 자기의 돈을 들여 군인으로 복무하겠습니까?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습니까? 누가 양 떼를 치면서 그 젖을 먹지 않겠습니까?
8.  내가 단지 세상의 관습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까?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기를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입니까? 신25:4
10.  아니면 다 우리를 위해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참으로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소망을 가지고 일하고 곡식타작하는 사람은 자기 몫을 얻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앗을 뿌렸다면 우리가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는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고 도리어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제단을 섬기는 사람들이 제물을 나누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로 먹고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이 내게 그렇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나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이런 내 자부심을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게는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그러나 내가 자원해 이 일을 행한다면 내게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자원해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게는 직무로 맡겨진 일입니다.
18.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게 상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전도자로서 내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습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유대 사람처럼 된 것은 유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이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1.  내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 없는 사람들에게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2.  연약사람들에게 내가 연약한 사람처럼 된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든지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23.  내가 복음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이 주는 복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24.  경기장에서 경주자들이 모두 힘껏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인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기 위해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으려고 절제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절제합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고 허공을 치듯이 싸우지 않습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시키는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도리어 나 자신은 버림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출처: GOODTV 성경읽기]


최종국 18-10-20 06:19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자리와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누구에게는 복음 사역자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구에게는 교회 안에 직분을 맡은 자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가능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처럼 우리도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얻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김영균 18-10-20 08:00
 
요즈음 제가 많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네요.
자유와 절제!
욕망과 사회화!
개인과 공동체!

현대인들에게 더 매력있는 삶은 전자를 모티브로 한 삶인 것 같습니다. 반면 기독교인인
우리들에게는 후자의 삶이 더 바람직한 삶으로 느껴집니다. 둘 중에 우리가 선택해야하는
답이 있는걸까요?

성경에 나오는 고대의 인물들은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산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유를 구사하여 살던 곳을 떠났고 여러 군데로 옮겨 다녔으며 거룩한 욕망,
비전을 쫒아 자신의  삶을 구가했으며 성경에도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보다는
아브라함 개인의 삶이 더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도 씨름하다가 졌다고 선언할만큼 욕망의 전차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먼 후대의 다윗이나 솔로몬도 욕망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일부 받은 것은 있으나 자신들의 자유와 욕망을 끝모르고 구가하고 맛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 모두 성경의 저자이기도 하며 받은 벌에 비하면 맛본 삶이 너무나 화려합니다.

예수님은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절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비록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일지라도 기본욕구를 더 중시하셨습니다.

어쩌면 자유와 욕망과 개인을 절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회화'의
보이지 않는 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가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법과 규율 만으로는
질서가 잡히지 않을 때 자유와 욕망과 개인을 스스로 제한하도록 권유받는 거죠.
거기에 신의 이름과 권위를 입히는거죠.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도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인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덕있는 삶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성숙한
덕이 아닌  사회화의 결과로서 습관적으로 우리가 자유와 욕망과 개인을 억압한다면, 게다가
교회는 다른 사회 이상으로 외적 표준화를 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가
위축되는 부작용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묻혀있어야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기피하는
공동체는 바람직한 공동체일 수 없을 것입니다.

현대는 사회화와 그 반발로서의 자기장벽, 둘 다에 의해서 진정한 자기를 잃어버린 시대인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것! 자유와 십자가가 양립할 수 았는 온전한 자기로 살았던
예수님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현대가 필요로하는 구원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배상필 18-10-20 14:06
 
2.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내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기 때문입니다.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의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배운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을 실제로 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과 교회 안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양육을 하는 성도들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비량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사역을 병행해서 했던 것 같습니다. 자비량으로 사역을 함으로서 바울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반응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더 배워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는 것, 손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일지라도 고린도교회의 바울처럼 신뢰를 의심받는 한국 교회는 더욱 더 복음을 위해서 절제하고, 포기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진옥 18-10-20 23:28
 
22.  연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연약한 사람처럼 된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든지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경숙 18-10-23 07:32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고 도리어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내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습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도 이런 내 자부심을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