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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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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02 06:11
[우리말성경]- 고린도후서(2Corinthians) 6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85  

6장

 

1.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우리가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지 마십시오.

바울의 기쁨

2.  말씀하기를 “내가 은혜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사49:8
3.  우리는 무슨 일이든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섬기는 일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4.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들로 추천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많은 인내환난궁핍과 곤란과
5.  매 맞음과 감옥에 갇히는 것과 난동과 수고와 자지 못함과 배고픔 가운데 하나님의 일꾼들로 지냅니다.
6.  또한 우리는 순결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합니다. 또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겪으며 일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1.  고린도 사람들이여, 우리의 입이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넓게 열려 있습니다.
12.  여러분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 좁아진 것입니다.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말합니다. 여러분도 보답하는 양으로 마음을 넓히십시오.
14.  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의와 불법이 어떻게 함께 짝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15.  그리스도벨리알이 어떻게 하나가 되며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함께 몫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행할 것이니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레26:12;렘31:1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그들과 떨어져 있으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사52:11
18.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들이 될 것이다. 전능하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사43:16;호1:10    [출처: GOODTV 성경읽기]


김영균 18-11-02 06:34
 
14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죄를 멀리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과는 가까이하지도 말라고 당부하는 바울!

바울은  분리됨의 성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회 안 마저 도덕적으로 문란했던 그때, 종교가 타락과 거짓 신에 대한 우상숭배의 온상이던
그때는 더더욱이나 의미있는 성별의 개념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시대의 가장 거대한 죄악은 바로 그 분리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밖을 정해 안을 구별하는 분리주의! 거기서 비롯되는  '다름과 차이'의 정당화!
인간같지 않은 혐오스런 갑질을 자행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우리 시대 최상부의 갑질 피의자들은,
피해자인 을과 갑인 자신은 철저히 분리된 계급에 속해있고 따라서 차이와 차별이 있는 것은 정당
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 불공평과 빈부의 격차는 모두 '분리와 차이'를 정당한 것으로 보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아닌지요? 분리주의에 기반해 서로에게 끔찍할만큼 적대적이고 폭력적이 된
종교들 간의 반목은 또 어떻구요?

분리의 개념이 왜곡돼이 진화하면 '차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너희는 다르다는 것! 차이가 있다는 것! 그 차이만큼 나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다른 권리를 누리고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

차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비유 중 아침 아홉시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 다섯시부터 일한 사람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한 농장주인의 비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농장주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죠.

바울때는 분리와 구별이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당히 도덕적으로
깨끗한 오늘 날에는 자신에게 때를 묻히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 분리의 간극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더 무서운 죄의 인자로 자라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을 정해 분리된 바깥의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심지어 테러리즘같은 폭력성을 유발하기도 하며 차이를 정당화하는 무서운 암으로
자라나는....

예수님은 분리된 성별과 때묻히고 비난받는 타자 껴안기 중 선택이 필요하면 늘 후자를 선택
하셨습니다. 사람과 이웃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가 때묻히고 티격태격할지라도  관계망 안의 삶을
껴안고 뒹구는 것을, 타자에게도 스쳐 지나치지 않고 말 건네는 것을 분리된 성별보다 훨씬 더
거룩한 삶으로 보셨습니다.
이경숙 18-11-02 07:07
 
우리는 무슨 일이든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의와 불법이 어떻게 함께 짝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빗속을 뛰어가면 비를 맞지않을까?
낮에 나온 반달, 경계선의 정의........모순율
최종국 18-11-02 09:08
 
자신이 먼저 변화되고, 남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이 바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은 변화되어야 할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 다른 사람들에게 부모의 심정으로 가가가는 것입니다.(13절)  거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배상필 18-11-02 17:55
 
8.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겪으며 일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바울과 그 동료은 속이는 사람어있고, 별볼일 없는 무명한 사람이었고, 무기력한 죽은 사람 같았고, 이름없는 예수를 따르기에 벌받는 사람 같았고, 온갖 핍박을 받기에 근심 많은 사람 같았고, 사회의 하층민이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울과 동료들은 진실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유명한 사람이었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항상 기뻐했고, 아무것도 없지만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로 인해 부유하게 했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마음을 가졌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고,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길 원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면의 가치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하소서.
강성희 18-11-02 19:30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들로 추천하려고 애씁니다.
정말 가슴 벅차게 하는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네이버 검색>
*벨리알*
가치 없다’, ‘쓸데없다’, ‘무익한 자’란 뜻. 구약성경에서는 ‘벨리알’이라는 말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사회에서 해악(害惡)만 끼치는 ‘불량배’(신 13:13; 삿 19:22), ‘악인’(나 1:15), ‘행실이 나쁜 자’(삼상 2:12) 등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영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훼방하는 사탄이나 그 하수인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었다(고후 6:15). 사도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가 근본적인 측면에서 하나될 수 없음을 가르칠 때 그리스도와 벨리알의 대비로 설명하고 있다. (출처:라이프 성경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