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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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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06 06:11
[우리말성경]- 고린도후서(2Corinthians) 10장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215  

10장


사도권에 대한 바울의 변호

1.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는 유순하나 떠나 있으면 여러분에 대해 강경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온유관용으로 친히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요청하는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갈 때 우리가 육체를 따라 행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내가 단호히 대처하는 것같이 여러분을 강경한 태도로 대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3.  비록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살고 있지만 육체를 따라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가지고 싸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요새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모든 궤변을 무너뜨리고
5.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해서 스스로 높아진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복종시킵니다.
6.  이와 더불어 우리는 여러분의 순종이 온전하게 됐을 때 모든 순종치 않는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보십시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그가 그리스도께 속한 것처럼 우리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8.  만일 우리가 우리의 권세를 좀 지나치게 자랑한다 해도 그것은 여러분을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세우기 위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므로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9.  나는 편지로 여러분을 두렵게 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10.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직접 대해 보면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라고 말합니다.
11.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떠나 있을 때 편지로 보는 그 모습이, 함께 있을 때 행하는 행동 그대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  우리는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의 아류가 되거나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재고 자기들끼리 비교하니 지혜롭지 못합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정도 이상으로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분량의 범위 안에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곧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다다른 정도입니다.
14.  우리는 여러분에게 가지 못할 사람들로서 스스로 과신해 나아갔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여러분에게까지 갔던 것입니다.
15.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남으로 우리의 활동 영역이 여러분 가운데서 크게 확대되는 것입니다.
16.  그래서 결국 여러분의 지역 너머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영역에 이미 마련된 것들을 가지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17.  “자랑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자랑하도록 하십시오.”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은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입니다. 렘9:24

       [출처: GOODTV 성경읽기]


최종국 18-11-06 07:05
 
예수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겸손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또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다짐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귀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경숙 18-11-06 07:07
 
우리는 정도 이상으로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분량의 범위 안에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곧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다다른 정도입니다.
김영균 18-11-06 08:26
 
4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견고한 진은  불신앙이 아니라 물신(物神)일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의 신의 능력과 보호와 안정감을 1순위로 하고 조금 비는 데를
하나님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이라도 물질의 신의 자리보다 더 높은 데 둘수는 없죠.
최소한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노후를 살 수 있는 안정자금을 모을 때까지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진리를 갖기 위해서는 있는 것을 다 팔아 진리가 숨기운 밭을 사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믿음
없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을 직면해보자는 것! 자기자신을 제대로 보자는 것!
믿음이 달콤하다구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이 너무 은혜스럽고 내적으로 깊은 안정감을
누리게 된다구요? 전에 사랑하던 세상적인 것들이 싫어지고 그래서 좀 더 착하게 살게되는 것
같다구요?

제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나 믿음의 삶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었어도, 또는 깊은 명상이나 요가등을 통해서도 비슷한 내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죠.
세상과 분리된 선한 삶이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바울의 가르침
때문이죠. 바울은 지나치게 기독교 윤리에 부합하는 삶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랑이 아닌 세상과 교회의 분리를 종용했죠. 사랑은 교회 안으로 닫히고 말았으며
개인적인 것보다 회중적인 것이 되었으며 실천적인 것보다 설교의 주제가 되었고 구체적인 것보다
관념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제게 바울과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것에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진정한 신앙의 삶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노후로 갈수록 그것이 쉬워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꼭쥐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여러 사례로 보면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믿음이 없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렇게 나를 알고 인정하고나니 차라리 자유스러워지더라구요.
은혜에 중독되어 현실을 냉철하게 지각하지 못하는 은혜중독 증상도 없어지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들을 다 실천해야한다는 '억압'도 사라지더라구요.

그럼 왜 교회에 다니냐구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존중!
주로 없고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데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끌려서요.
그런 마음이 제 마음에는 아주 조금밖에 안 남아있긴 하지만 그 조금 남은 거마저 잃어버리면
제가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될 것 같아서요. 그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 곁을 배회하며 그 마음
지키려 교회에도 다니고 있습죠.

하나 더. 바울처럼 성과 속을,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지 않고 그냥 어떤 리듬을 타고 삶을 흘러가는
것같은 예수님에 끌리기도 하구요. 기쁠 때는 기쁨 속에 선과 악마저 묻고(잔치집에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예화처럼) ,  슬플 때는 슬픔 속에 선과 악마저 묻고(간음한 여인을
죄없다 하신 경우처럼) 곤경에 빠진 여인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이 선이나 죄의 구별보다 우선
이시고, 화날 때는 (성전을 뒤엎은 사례처럼) 단순하게 분노하고........    예수님은 머리속에
어떤 고정된 윤리조항이나 금기 같은 거 없이, 성과 속의 분리없이, 오로지 타자에 대한 '사랑'을
균형추로 삼고 리듬을 따라 흘러다니듯이 사셨죠. '속'과의  분리는 커녕 창기와 세리의 친구라는
비난을 늘 달고 다니셨죠.  그 리듬따라 사는 삶의 경지가 너무 끌려 배워보고 싶어 예수 곁을
맴돕니다. 아직은...
 
모르죠.
저도 어느날 진짜로 예수 믿고 예수 따라나서겠다고 할지도요.
그 날이 올까 두렵기도 합니다. ㅎ
     
강성희 18-11-07 08:44
 
그동안 집사님의 신앙 모습을 보며 궁금할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커밍아웃 비슷한 고백을 해주시니, 이제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존중! 
주로 없고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데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끌려서요. 
그런 마음이 제 마음에는 아주 조금밖에 안 남아있긴 하지만 그 조금 남은 거마저 잃어버리면 
제가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될 것 같아서요""

*집사님께서 이런 이유로 교회를 다니신다고 하셨으니........................

""믿음이 달콤하다구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이 너무 은혜스럽고 내적으로 깊은 안정감을 
누리게 된다구요? 전에 사랑하던 세상적인 것들이 싫어지고 그래서 좀 더 착하게 살게되는 것 
같다구요? 
제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나 믿음의 삶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었어도, 또는 깊은 명상이나 요가등을 통해서도 비슷한 내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죠.""

*이렇게 은혜와 안정감은 다른 종교나 요가나 명상에서도 느낄수 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집사님도 굳이 교회와 예수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오히려 빈민 지역에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기독교 봉사 단체에 소속되셔서  그 치열한 필드에서 직접 체험하시고,
잃어버릴까 두려운 그 사랑의 마음을 배우고, 베풀고, 채우며 사시는 것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을 구현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훨씬 구체적이고 적합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옮겨와 봤습니다. 어제 톡방에서는 김집사님 무한 애정자--김집사님이 보호자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는데 저도 인정요ㅎ--이신 배집사님께서 제 말 때문에 혹여라도 김집사님이 교회를 떠나실까 봐 걱정되셔서 언덕과 김집사님의 운명론까지 거론하신거 같은데, 집사님이 그렇게 감정적이고 단순한 분이 아니신걸 잘 아니 그런 걱정 붙들어 매겠습니다~(김집사님 떠나시면 저도 떠납니다ㅎㅎ) 제가 원하는건 어디까지나 건강한 토론의 장이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다른 사람들도 집사님만큼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람직한 신앙을 위해 발버둥치고 산답니다. 염두에 두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영균 18-11-07 10:45
 
제가 이래뵈도 신학토론 사회자 잖아요. 토론을 싫어한다면 그 자리에 잠시라도 앉아있을 자격이 없겠죠.ㅎ
먼저 오해부터 풀게요. 아마도 제가 다른 분들을 생각없다고 비웃는 느낌을 받으신것 같습니다. 제 견해가 지나치게 강하다 느끼시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의 견해는 기독교 전체로 보거나 언덕교회 안에서만 봐도 상당히 '소수의견'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소리치고 들이받으면서도 정작 본인 자신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난망함을 느낍니다. 제가 중간에 글쓰기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한 것도 그런 좌절감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댓글닷기를 시작한 데는 '나도 생각 좀 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숱한 좌절 뒤에 그런 마음은 모두 꺾였습니다. 지금 남은 것은 일단 성경을 제대로 알자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바울을 제대로 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그리고 예수님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같은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살아 생전에 예수님을 만난적도,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제대로 알고나서 믿든지, 따르든지, 떠나든지는 그 때 결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크게 기독교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사후 2,000년간 기독교가 개혁이랄 수 있는 순간을 맞이했던 것은 단 한 번 뿐이었습니다. 약 500년 전의 종교개혁 때였죠. 그 종교개혁에 의해서 새로운 믿음이 채택되어지는 순간 그 전의 핵심교리들은 전격적으로 부정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로 종교개혁을 맞이할 때까지 1, 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던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믿고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멀고도 멀었고 바울의 가르침과도 많이 달랐죠. 그렇다면 우리는 옳은 것을 믿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종교개혁은 바울의 사상을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많이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저같은 사람은 기독교 내에서 극소수이거나 이단으로 취급당합니다. 중세시대에 바울의 사상을 믿으면 이단취급당했듯이요. 제 목소리가 세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강집사님의 오해라면 오해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누가 더 똑똑하고 예리하고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자부심이 있다고 해봤자 칼로 물베기같은 좌절감을 넘어설 수는 없으니까요. 계란일수록 더 세게라도 부딪혀봐야지 뭐 느낌이라도 줄 수 있을 거잖아요. 제가 보는 관점에서 올바른 것이 극소수의 의견으로 남아있는 한 저는 앞으로도 세고 집요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아예 입닫고 숫자만 채워주는 껍데기 교인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겠죠. 이해해주시고 다른 의견은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저도 반대의 목소리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배우는 것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배상필 18-11-07 16:20
 
보수기독교(복음주의,)와 진보기독교(자유주의, 에큐메니칼)의 간극은 큰 것 같습니다. 마커스 보그도 얘기하기를 보수 기독교인과 대화하는 것보다 기독교 밖의 진보 유대인, 진보 무슬림과 대화가 더 잘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계속적으로 대화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언덕교회에는 다양한 신앙적 색깔이 있지만 대화가 아주 잘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 '기독교 대전환'(http://www.freeview.org/bbs/board.php?bo_table=a001&wr_id=64) 이 책을 알고 흥미롭게 읽고 공감도 많이 했습니다.한신대 출신 목사님이 쓴 책인데 김영균 집사님의 생각과도 비슷한 부분도 많은 것 같고, 더 급진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기회되면 한번 보셔도 좋을 듯 해요~
                    
김영균 18-11-07 17:15
 
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강성희 18-11-07 17:45
 
저와 김집사님의 대화가 진보 유대인과 진보 무슬림보다 얘기가 안 통하는 보수기독교인과 진보기독교인의 대화처럼 보이셨나요?
물론 답을 구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웃음이 나네요.
매도하지 마세요. 저와 김집사님 사이에서의 집사님 글은 어제부터 매우 불쾌합니다.
                         
배상필 18-11-08 17:54
 
강 집사님, 오늘 좀 바빠서 이제야 글을 보고 저도 좀 놀랐습니다. 죄송하기도 했구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글을 보니 집사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집사님과 강 집사님이 대화가 안통하는 보수, 진보기독교인 같다는 의미는 아니었구요. 그건 일반적이 교회와 한국 사회를 얘기하는거이고, 두 분의 집사님은 마지막 문장 - 다양한 신앙적 색깔이 있지만 대화가 잘 되는 것 -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지 않고 글로 쓰다보니 의도가 충분히 표현이 안된 것 같습니다. 이찌되었던 제가 경솔하게 글을 써서 집사님 마음 상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조금 더 주의를 하겠습니다~
               
강성희 18-11-07 16:31
 
제가 뭘 오해했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집사님께서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말씀하시듯, 저도 읽고 받은 느낌을 그대로 적은 겁니다.
저는 집사님의 고민과 문제 제기를 높이 삽니다.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수 있는 유연함과 포용력을 자랑으로 삼는 저희 교회가 아닌지요? 문학성과 철학과 신학적 지식을 아우르며 고뇌를 토로하는 집사님의 멋진 글은 호기심과 기대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과도한 단정이 매도를 넘어 모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글이다, 감사하다 칭찬하고 박수 치는 분들이 많으신거보니 이런 느낌은 분명히 저만 받은거 같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혼자 불편했습니다. 읽을 때마다 수없이 외쳤습니다. '아니라니까요? 그렇지 않다니까요? 왜 그렇다고 몰아가시나요?'
....내가 하나님 보기 부끄러워 나무 밑에서 숨어서 보니 너희들은 바울이 만들어 놓은 '믿음'이라는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만 쫓으면서 은혜를 간구하고 있더라. 교회 안가면 벌 받을까 불안한 마음은 성실한 교회 출석자를 양산했고 저 믿음을(우상인) 열심히만 믿으면 은혜가 오고 구원을 받을거라고 철썩같이 신봉하고 있다. 그러면 구원을 주실 정도로 하나님이 그렇게 째째하신 분이신가?...
어떠신가요??
말 나온 김에.....저는 건강한 토론의 장을 위하여 발톱을 최대한 감추고(대거리할  깜냥이나 되겠어요마는) 좋게 좋게 집사님 글에 서너번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때마다 달아주신 집사님의 대댓글에서 '발끈'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이걸 원하지 않으시는구나. 그럼 그냥 조용히 읽기만 하는 걸로...' 이렇게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공부해 나갔는데 (이곳은 토론 이전에 저에겐 너무나 중요한 공부의 장이었습니다.집사님 글은 공부거리로 좋은 자료였구요.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너무 괴로와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집사님 글 때문이 아니지요. 바로 포용하지 못 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은 저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자책하다 읽기를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갔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부도 끊기니 그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고 조용히 묵상하며 지내고자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몇년 전 제가 아주 존경하고 좋아한 장로님이 교회를 떠나시면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침묵하는 언덕에서 희망을 보지 못 했다"고  토로하셨는데...그때도 그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데 지금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지금의 제 심정도 그렇습니다.
집사님은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고 계십니다. 절대 소수자가 아니십니다.
                    
김영균 18-11-07 17:08
 
사람의 솔직한 감정은 참 복합적이구나! 를 강집사님의 바로 위 댓글에서 느끼게 되네요. 저의 글에 대한 강집사님의 느낌이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표현하신 복합적인 여러가지를 다 받아들이면 평균내서 중간점수는 주시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저로서 정리는 잘 안되지만 가장 솔직하게 얘기해주신 것 같아서 표현하신 그대로 여러 측면의 말씀을 다 각각 수용하려고 합니다. 
과도한 단정은 저 자신의 정직한 고민의 결과로서의 견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회야말로  저 이상으로 진리를 하나의 박스 안에 담아 절대유일무이한 것으로 단정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교회들의 단정과 몰아감보다는 제가 훨씬  약하다고 생각해요. ㅋ

어쨋든 서로 상처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나가면 좋겠숩니다. 침묵보다는 따가운 댓글이 좋습니다. 제가 언제 발끈했었나요? 그것도 몇차례나? ㅎㅎ 그래도 계속 질러주세요.^^
                    
김영균 18-11-07 18:57
 
그리고 질문이 있어요. 혹시 교우들이 강집사님과 저 사이의 토론에서 침묵하는 거로 인해 강집사님이 교회를 떠나신 모장로님과 비슷한 심정을 느끼신다는 건가요? 문맥이 잘 이해되지 않아 여쭙는 겁니다.
                         
강성희 18-11-07 19:11
 
아닙니다.
더이상 이 건으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저 그럴 이유도 없구요.
배상필 18-11-06 18:22
 
10.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직접 대해 보면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라고 말합니다.
11.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떠나 있을 때 편지로 보는 그 모습이, 함께 있을 때 행하는 행동 그대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 For they say, “His letters are weighty and strong, but his bodily presence is weak, and his speech contemptible.”
11 Let such people understand that what we say by letter when absent, we will also do when present. [NRSV]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불신하는 것에 대해서 바울이 자신을 계속해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바울이 받는 비판 중의 한 가지는 바울의 능력과 관련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글쓰는데 능했던데 비해 말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말로는 말에 시원치 않다고 했는데, 영어 번역을 보면 무시할만하고, 한심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외모와 관련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외모가 약하다는 뜻이 무엇인지 불분명한데 못생겼다는 의미일수도 있고 -바울과 테크라 행전이라는 곳에는 바울이 키가 작고, 대머리에, 안장 다리이고, 양 눈썹은 붙어 있고, 매부리코 였다고 합니다 - 카리스마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호감가는 외모는 아니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주장은 자신은 말과 행함이 일치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주장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 '삶'이 그 말을 따라주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 '말'이 좀 어눌해도, '삶'이 훌륭하면 '말'의 단점이 모두 극복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 이렇게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바울처럼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삶'. 그 삶을 추구하길 원합니다.
강성희 18-11-07 01:24
 
우리는 정도 이상으로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분량의 범위 안에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김희병 18-11-07 19:39
 
펜은 칼보다 강하다 하지요.
그동안 눈으로만 성경공부 의견을 나누시는 걸 보았습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릴 때가 된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아시나요?
제 생각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생각하는데... 남에 대한 평가를 그런식으로 하시는지요.
이런 무례는 어디서 나오는지요.

전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저희처럼 성경 공부 초보자들은 광풍이 몰아치듯 다른 교인들을 몰아붙이는 모습에 이해도 못 하겠고 심한 모욕감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꿈꾸었던, 저희 부부한테 어울리는 자리는 아닌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