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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언덕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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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17 05:45
역대하 17장(2Chronicles)
 글쓴이 : 이경숙
조회 : 1,673  

[공동번역]
제17장
 
 
[여호사밧]
1.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에 강경 정책을 폈다.
2. 그는 요새화된 유다 성읍들에 군대를 배치하고 유다 전국과 선왕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도 수비대를 배치하였다.
3. 여호사밧은 선왕이 처음에 살던 본을 따라 살았으며 바알신들을 찾지 않았다. 이것을 보시고 야훼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다.
4. 그가 선왕의 하느님을 찾고 그의 계명을 따라 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5. 야훼께서 그의 통치를 굳건하게 하셨고 온 유다 백성이 선물을 바치니 그의 부귀는 대단하였다.
6. 그는 야훼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살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을 유다에서 쓸어 없애버렸다.
7. 또 그는 왕이 된 지 삼 년 되던 해에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벤하일, 오바디야, 즈가리야, 느다넬, 미가야 등 대신들을 유다 성읍들로 보냈다.
8. 또 그들과 더불어 스마야, 느다니야, 즈바디야, 아사헬, 스미라못, 여호나단, 아도니야, 토비야 등 레위인들을 사제 엘리사마, 여호람과 함께 파송하였다.
9. 그들은 야훼의 법전을 가지고 유다 전국을 돌며 가르쳤다. 유다 성읍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돌며 백성을 가르쳤다.
10. 유다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야훼를 두려워하여 감히 여호사밧에게 싸움을 걸지 못하였다.
11. 불레셋에서 여호사밧에게 선물로 은을 가져다 바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랍인들은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바쳤다.
12. 이렇게 하여 여호사밧은 점점 강대해졌다. 그는 유다 나라 안에 요새들을 세우고 군수물자 보급성들을 세웠다.
13. 이렇게 그는 유다 성읍들에 많은 일을 해놓았으며 예루살렘에는 정예부대를 배치해 두었다.
14. 가문별로 병적에 오른 부대는 아래와 같다. 유다 가문의 천인부대 사령관들로서 아드나 사령관 밑에 삼십만,
15. 그 다음으로 여호하난 밑에 이십팔만,
16. 그 다음으로 야훼를 위해 자원해 나선 지그리의 아들 아마시야 밑에 이십만,
17. 베냐민 가문에서는 용장 엘리아다 밑에 방패를 들고 활을 쏘는 병사 이십만,
18. 그 다음으로 여호사밧 밑에 무장한 병사 십팔만이 있었다.
19. 이들이 왕을 모시는 병사들이었다. 그 밖에도 왕이 유다 전국의 요새화된 성읍들에 배치한 병사들이 있었다.
[NIV]
Chapter17
 
 
1. Jehoshaphat his son succeeded him as king and strengthened himself against Israel.
2. He stationed troops in all the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put garrisons in Judah and in the towns of Ephraim that his father Asa had captured.
3. The LORD was with Jehoshaphat because in his early years he walked in the ways his father David had followed. He did not consult the Baals
4. but sought the God of his father and followed his commands rather than the practices of Israel.
5. The LORD established the kingdom under his control; and all Judah brought gifts to Jehoshaphat, so that he had great wealth and honor.
6. His heart was devoted to the ways of the LORD; furthermore, he removed the high places and the Asherah poles from Judah.
7. In the third year of his reign he sent his officials Ben-Hail, Obadiah, Zechariah, Nethanel and Micaiah to teach in the towns of Judah.
8. With them were certain Levites -- Shemaiah, Nethaniah, Zebadiah, Asahel, Shemiramoth, Jehonathan, Adonijah, Tobijah and Tob-Adonijah -- and the priests Elishama and Jehoram.
9. They taught throughout Judah, taking with them the Book of the Law of the LORD; they went around to all the towns of Judah and taught the people.
10. The fear of the LORD fell on all the kingdoms of the lands surrounding Judah, so that they did not make war with Jehoshaphat.
11. Some Philistines brought Jehoshaphat gifts and silver as tribute, and the Arabs brought him flocks: seven thousand seven hundred rams and seven thousand seven hundred goats.
12. Jehoshaphat became more and more powerful; he built forts and store cities in Judah
13. and had large supplies in the towns of Judah. He also kept experienced fighting men in Jerusalem.
14. Their enrollment by families was as follows: From Judah, commanders of units of 1,000: Adnah the commander, with 300,000 fighting men;
15. next, Jehohanan the commander, with 280,000;
16. next, Amasiah son of Zicri, who volunteered himself for the service of the LORD, with 200,000.
17. From Benjamin: Eliada, a valiant soldier, with 200,000 men armed with bows and shields;
18. next, Jehozabad, with 180,000 men armed for battle.
19. These were the men who served the king, besides those he stationed in the fortified cities throughout Judah.




이경숙 14-04-17 06:08
 
그가 선왕의 하느님을 찾고 그의 계명을 따라 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야훼께서 그의 통치를 굳건하게 하셨고 온 유다 백성이 선물을 바치니 그의 부귀는 대단하였다.
(어떤 고고학자는 솔로몬이 아닌 여호사밧을 영화의 절정이었다라고 주장....)
최종국 14-04-17 06:20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지켜보시기에 나의 말 한마디 생각마져도 조심해야 한다.
김영균 14-04-17 07:55
 
여호와를 경외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난과 질병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 주셔서 안전하고 풍요한 삶을 살게 된다.

이런 구약적 사고를 왜곡하여 강조한 구세대의 목사님들로 인해 우리의 어머니 세대들 중
많은 분들은 모든 예배와 새벽기도, 금요기도회도 빼먹지 않고 참석하여
두 세 시간 씩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었습니다.
낮에는 틈만 나면 전도를 위해 기꺼이 동원됐죠. 

그 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그저 하나님꼐 많은 시간을 바쳐 열심을 내며
선하게 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분들이 너무 가난하게 살고 가정 불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주 심한 질병에 걸려 고통 당하다가 죽거나 끝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 같은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은 '맑게 깨어 있는 정신과 현실적으로 치열한 삶'을
반드시 수반할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어쩌면 지금까지도 한국의 기독교는 열심만 강조하고
'맑게 깨어 있는 정신과 현실적으로 치열한 삶'을 가르치지 않아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교회를 위한 제물로 삼아
그들의 삶을 망가뜨렸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돈을 벌러 가는 대신 하나님꼐 구하러 교회로 나아가
끝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제 세월호의 침몰 사건 못지 않게 교회가 그 배에 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그 가족들의 삶마저 침몰시켰습니다.

우리 언덕 교회는 이 어지럽고 불안하고 혼란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위안과 보호를 구하는 데 그치지 말고 ' 하나님으로 인해서 고도로 맑게 깨어 있는  삶'을 함께 찾고 구해서 이 시대라는 이름의 위태로운 배에서 침몰되어 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조 14-04-17 08:22
 
좋은 말씀입니다. 영화가 차면 기울고, 너무 기울면 다시 차기 쉬울 것임을.... 먼저 마음을 맑게....
박창훈 14-04-17 12:10
 
"그가 선왕의 하느님을 찾고 그의 계명을 따라 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야훼께서 그의 통치를 굳건하게 하셨고" 역대기 기자의 사관은 분명합니다. 유다의 흥망성쇄가 하나님에 대한 밈음과 그 선행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포로기 이후의 절망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설명이라고 그래서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나님으로 인해서 고도로 맑게 깨어 있는 삶"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자칫 기독교의 본질이 상황판단이 분명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을 위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도, (때로 그들의 무지로 인해) 가난으로 이끌었던 종교적인 행위도,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목수의 일을 뒤로 둔 예수님, 어부의 일을 뒤로 둔 제자들처럼. (김집사님의 열심을 더욱 자극하여 사업보다는 언덕교회에 더 순종하게 하려는 음흉한 의도로...문제를 제기함^^.)
김영균 14-04-17 14:09
 
목사님의 진심 어린 말씀 고맙습니다.

저는단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 제 글에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고는 봅니다)

최근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을 메모해 놓은 것이 있는 데 혹시 저의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하단에 옮깁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더러는 이 말씀을 사회 속에 하나님의 정의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으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더러는 전도나 봉사를 열심히 하며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말씀은 위의 두 가지 경우를 다 포함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더 근본적으로 '존재방식으로 사는 삶'을 의미할 것이다.
'TO HAVE'가 아니라 'TO BE'의 삶.

정의나 평등도 엄밀히 따지면 to have의 삶에 더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to be의 삶은 정의나 평등으로부터도 초월해 있는 비밀한 신앙의 삶이다.
이 쯤에서 예수님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왜 사회정의를 드러내어 말씀하시지 않았는지 이해가 간다.
사회정의, 그리고 우리의 합리성이 제시하는 많은 것들 역시 하나님 나라의 열매일 지언정
우리가 물리적인 힘이나 사회적 제도화를 통하여 그것을 이루어 낸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안에서 to be의 삶의 비밀을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확장된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과정이나 열매를 만든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제 메모는 이렇게 끝을 내고 있네요.

'맑게 깨어 있는 정신'이란 표현에 있어서 사람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to be할 때 주어지는 깊은 영적 통찰력에 더 비중을 두고자 했습니다.
교회 이야기를 하자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박목사님께서 조금 더 길게 언덕교회를 섬겨 주시는 것이 제가 열심을 내는 것 보다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please...
김영균 14-04-17 19:44
 
혹시 위의 글을 읽으실 분들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하나님 안에서 깊은 존재의 삶을 산다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욕구하는 많은 것들은 아닐 테죠.
비록 가난하더라도 내적으로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지성적, 영적 삶을 의미하는 것일 거라고 봅니다.
어쨋든 우리가 깊은 존재의 삶을 산다면 하늘 아버지가 우리를 (최소한 굶어 죽거나 남에게 빌어 먹지 않도록) 돌볼 것이라는 데는 (미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의 첫번째 댓글은 이 깊은 경지에 이름 없이 단지 교회를 위해서 열심을 내면서 사실은 인간으로서 욕구하는 다른 것들이 채워지기를 바랐던 기복주의 신앙을 언급한 것입니다.
박경옥 14-04-17 20:09
 
그들은 야훼의 법전을 가지고 유다 전국을 돌며 가르쳤다.
유다 성읍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돌며 백성을 가르쳤다.

저도 목수의 일을 뒤로 둔 예수님, 어부의 일을 뒤로 둔 제자들처럼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가난으로 이끌었던 종교적인 분들을 통해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헌신이 저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또 도전이 되었으며 지금도 때론 그립기도 합니다.

물리적인 힘이나 사회적 제도화를 통하여 이루어 낼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정의나 평등으로부터도, 전도나 봉사로부터도 훨씬 초월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to be의 비밀한 삶
너무 지당하신 말씀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ㅜㅜ
그 모든 것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한 것인지 자기 신념인지 자기 최면인지를 무 짜르듯 이분법적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길 바라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으로 우리 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집사님 같은 분들의 가르침 안에서 오늘까지 왔기에 오늘도 믿음의 길에서 기쁘게 걸음을 내딛습니다.
주님과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