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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설교말씀 박경옥 202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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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nduk.or.kr/bbs/bbsView/32/5682963

오늘 설교 말씀이 언제나 그러하듯 너무 귀하고 좋은데 녹화가 안됐기에 제가 정리해 올려봅니다.

 

※명절에 주님을 찾은 헬라인들※ 

요한복음 12장 20~26 

 

 오늘 본문은 명절에 예수님을 찾아 만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으로 헬라인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사실은 중요한 사항을 암시하고 있습니다.사실 오늘 본문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약점을 잡고 그를 몰락시키러 했습니다. 특히 당시 종교지도자들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예수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은 바로 성전 청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무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하는 모습을 보자, 바리새인들이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는 자조 섞인 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바리새인 중심의 유대교 세계관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고 말한 바로 그 다음 20절에서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은 사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바로 헬라인들이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나서 바로 헬라인들을 만나는 순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을 보면, 성경을 읽는 독자들과 또 말씀에 집중하려는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 신앙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이제껏 유대교가 유지해 온 민주주의적 배타성을 통한 정체성은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나서 바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맨 처음 2장에서 성전청결 사건이 나오고 오늘 본문에서는 헬라인들과 대화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청결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56장 7절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셨는데, 그것은 성전을 성전되게 하는 일이셨습니다. 본래적인 하나님 신앙의 본질을 제시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 요즘 표현으로는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계시된 유대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나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편협했고 궁극적으로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 잘못된 모습을 공관복음은 성전청결을 통해, 그리고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헬라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포용해야한다는 것은 명령이 아닙니다. 복음자체입니다. 복음이 이미 서먹서먹하고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배타적인 생각과 마음과 태도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변질된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회복하느냐?"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관계를 맷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복음의 본질에 가까운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헬라인들이 찾는다는 말씀을 듣고는 23절에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십니다. 언뜻 들으면 유명세를 타더니 이제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영광'이라는 말을 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찾고 따르고 함께 하러는 바로 그 순간에 24절에서 '썩어질 씨앗'의 말씀을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라고 강조하시면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밝히신 '인자의 영광'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에 놓여있는 죽음, 즉 십자가였고, 그리고 그 후에 오는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세속적인 기억이나 존재나 획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적인 영역에서는 망각과 부재와 상실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실패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그 상태에 다다르면, 그때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죽으면 살리십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5절에서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의 구별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세상사람들의 영광의 개념과는 다른 영광, 세속적인 욕망이 끊임없이 유혹하고 자극하고 몰아붙이는 그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시간과 공간의 영속이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유한한 우리 살이 영원의 반열에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또 마지막 26절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과 주님을 따르는 것이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3번이나 '주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삶은 같이 갑니다. 당연히 주님을 따르는 삶은 가장 윤리적이고 최고의 도덕적 삶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윤리적으로 살아라."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 너머로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해석에 주목합니다. 그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경말씀의 투박함에 있습니다. 너무나 도전적이고 급진적이어서 도저히 그 말씀을 그대로 따틀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우리가 따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하고 단정적으로 쉽게 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힘은 그 문체의 투박하고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데에 있습니다. 해석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문자 그 자체의 도전에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그 길을 문자적으로 가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문자 그대로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능했고 그 은혜로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성경의 생명력은 이러한 문자 자체에 대한 부딪힘에서 발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민족적인 배타성을 넘어서 만인을 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택하셨고 부활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따라서 죽음의 길을 가라. 그 후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라는 투박하고도 무거운 말씀을 끌어안고 고민하며 사는 자만이 예수님을 섬기며 따르는 자들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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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배상필 2020.1.27 09:00

    박 권사님, 수고 많으셨어요!

  • 박경옥 2020.1.26 22:42

    예화로 영화 캣츠를 인용한 말씀은 적지 못했습니다.
    다 적을 수가 없어서. 그건 그 자리에 함께한 분들만의 특권으로 남겨두었읍니다. 죄송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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