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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예배 (김태완 목사)설교말씀 요약 박경옥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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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41~48

예수님의 눈물과 분노

 

교회는 같은 시간에 한 공간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란 의미가 큰 비중을 차지했었는데 코로나 시대에 예배가 이렇게 비대면 예배로 드려지니 대면 예배로 충족되었던 신앙의 교제와 소통 안에서 이루었던 성숙과 공동체성을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지 여러 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예배에 대한 자세가 비대면이 되어짐에 따라 얼마든지 수동적일 수 있기에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어집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은 여러가지 제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교회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 가운데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역설이 나옵니다.

41~44절에서는 예루살렘, 즉 평화의 성이라 불리는 도시에 평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45~46절에서는 기도하는 집에 기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47~48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집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 본문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당시 로마제국의 힘, 세상의 힘과는 달랐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섬김, 낮아짐, 비움, 내어줌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셨고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를 예루살렘은 알지 못했고 예수님은 그런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41절의 '우시며'인 헬라어 κλαίω [ klaiō ] 의 미완료 ἔκλαιον는 그저 흐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통곡하며 애통해하고 비통해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우신 구체적 이유는 예루살렘의 멸망 때문인데 그 멸망의 원인을 42절에서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44절에서 보살핌 받는 날에 대해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 역사적으로 아주 황폐하게 파괴됩니다. 그러므로 43, 44절은 예수님의 예언으로, 또 제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42절 후반부엔 이 일이 바리새인에게는 숨겨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의 길이 보여졌지만 거절하고 외면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평화와 보살핌을 몰라 멸망받을 그들을 위해 통곡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유월절이 다가오는 때라 모든 이스라엘이 성전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한 상인들이 제물과 성전화폐를 파는 장사꾼의 장터로 둔갑시키고 이득을 챙겼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타락한 성전을 이사야 말씀과 예레미야 말씀을 인용해 고발하고 계십니다.

 

이사야56:7절에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지만 기도하지 않는다고 고발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본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믿음을 상실하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강도의 소굴'이란 예레미야 7:11절에서 인용되었는데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여 위선과 욕심과 부패의 온상으로 투기장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율법과 권위가 거짓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거짓말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와 제물만 드리면 안전하고 깨끗해진다고 거짓증언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타락은 하나님의 뜻을 거짓으로 가르친 지도자들과 또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랐던 백성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에 관한 일과 보살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 하나님과 상관없는 집으로 만들고 오직 세상에서의 안전과 자기 이익을 보장해주는 강도의 소굴이 된 그 성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분노로 이어집니다. 기득권과 권력의 중심이 되어버린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내쫓으십니다. 그들의 악행과 위선을 폭로하시고 그리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노하신 후 거기서 멈추신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전에 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눈물은 사랑이셨고 분노 또한 사랑이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우셨고 사랑하셨기에 분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44,45절 말씀은 자기 집에 오신 하나님을 죽이셨음을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거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기 신앙, 자기 신념은 하나님의 집에 오신 하나님을 죽이려 합니다. 마치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뜻과는 상관없는, 배치되는 모습으로, 교회가 되지 못하고 교회를 운영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이 사회에서 평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교회가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평화와 돌보심을 모르는 세상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예수님처럼 살기로 고백하며 그 길을 가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하나님의 평화에 관한 일과 보살핌은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교회로 지어져가는지,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라는 고백이 공허하게 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교회의 부패와 위기에 침묵하고 있는지 아니면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바탕이 '사랑'인지 말입니다. 

이 질문들이 우리를 교회답게, 언덕을 교회답게, 한국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여 우셨고 사랑하여 분노하심으로 우리에게 평화와 보살핌을 주시고자 하신 그 사랑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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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0.9.14 09:35

    글자로 보는 설교, 묵상된 설교, 단상으로 소화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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