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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예배 (김태완 목사)설교말씀 요약 박경옥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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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공동체

누가복음 4장 16~21절 

 

올해 언덕교회 표어는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입니다. 이에 맞는 성구를 오늘 본문 누가복음 4장 18~19절로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생명이 있다, 살아 있다고 할 때는 반드시 자유가 있습니다. 해방과 치유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라신 곳인 나자렛 회당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자렛에 들어간 날이 안식일이라 예수님은 늘 하신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거기서 회당장이 예수님께 예언서 봉독과 설교를 부탁한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자 예수님께 준 부분은 이사야서였습니다.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받은 주님은 말씀을 찾으셨습니다. 의도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이사야 61장 1~2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낭독하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쳐다봤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한 마디로 자신의 설교를 결론 내립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인용했던 이사야 61장 상황은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나라를 잃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시대였습니다. 예수님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백성들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억눌려 있었고 눈 먼 자였고 포로 된 자였습니다. 참혹하고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메시아'가 바로 자신임을 선포하셨습니다. 

 

메시아이신 주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데 그 복음은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는 레 25:8-55에 나오는 '희년'(year of iubilee)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사야의 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은 당신의 사명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가난한 자들 및 이방인들을 포함한 온 인류를 위해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 복음에는 희년의 정신 즉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며 살리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해방되고 치유되어 생명답게 사는 그 날이 바로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이루어졌다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좀 더 확대해 보면 가난한 자란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 그리고 밀려난 사람들과 차별대우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기 보다는,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그 고난에 동참하시며, 이기기를 더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 구절의 전후를 살피면 하나님이 시험을 주신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시험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셔서 그 시험을 견디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을 이기게 하신 분이십니다. 

 

시편은 2/3가 탄원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으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여러 절절한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탄원시의 마지막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끝을 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 삶이 바뀌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시편 23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은 그런 의미에서 목가적이고 평온한 1~3절이라기 보다는 4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 외면하는 분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칠 때 18년 동안 병마에 시달려 허리를 조금도 펼 수 없는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불러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이것을 본 회당장이 분을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그때 예수님은 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이 18년 동안 병마에 시달린 여인에게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딸, 이 여인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옭매고 있던 장애의 치유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죄인 취급 받던 사회적, 종교적 틀에서도 해방 시켜주신 것입니다. 바로 생명을 살리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제대로 살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본문 18절을 보듯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에 자유함을 얻는 것,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살아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낼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도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성령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들은 나를 포함한 공동체의 생명을 살리는 밑거름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 땅에서 계속해 나가는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그런 교회가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셨던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배척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상관없는 조직일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온갖 세상 욕망을 이루기 위한 종교적 이익 집단(?)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교회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어느 뉴스 앵커의 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언덕교회만이라도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고난 받는 자를 위로하며 그들의 편에 서는 교회,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2021년 신축년, 소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올해도 우리들의 앞에는 여전히 어렵고 버거운 현실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현실 앞에서 우리 언덕교회가 주님의 영을 받아 생명을 살아내며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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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1.1.18 11:48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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