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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예배 (박창훈 목사)설교말씀 요약 박경옥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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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의 심문을 받으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8장 12-14절; 19-24절)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시험을 받는 사이사이에 예수님에 대한 심문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 과정이 시작되어 심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흩어져 있는 두 개의 본문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먼저 예수님의 심문을 담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본문에서는 결박된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는 것과 그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두 번째 본문에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졌다는 것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안나스는 비공식적인 심문을 했고, 이후 가야바가 공식적인 심문을 차례대로 하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어디에도 예수님의 구체적인 죄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긴급 체포되었는지, 도대체 무슨 항목으로 기소된 것인지, 이른바 형법상의 사법적 정의가 지켜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심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14절에서 이를 주도하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본 심문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짜맞추기 수사와 심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의 공모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의도를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공관복음에 이미 나오지 않느냐고 독자들에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심문 내용은 공관복음에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에 유대교에서 가장 엄격하게 금하는 신성모독을 범했다는 것이고,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마지막 날”의 심판 때에는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이 죽이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자들이 예수님의 기소 내용을 알 것으로 기대하면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찾으려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집요하게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물은 것을 19절에서 두 가지로 그 제시어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9절에서 나오는 이 두 개의 제시어를 통해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도대체 어떤 내용을 심문하였을까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이 다닌 사람들과 그가 가르친 내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첫째의 심문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라 다닌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에 대한 질문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모였던 것일까요? 그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모였던 이유를 물으면, 이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단번에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 겁니다. 그렇게 하면 반역의 무리를 선동하는 정치인이라는 기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심문 내용은 뒤에 나오는 33절에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는 첫 질문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8:33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난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고 뒤에 19:12에서 빌라도가 아무리 물어봐도 특별한 죄목을 찾을 수 없었을 때에, 오히려 유대인들이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빌라도를 설득하는 논리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18:36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냉담하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표현은 유대인들이 우기는 논리나 빌라도가 걱정할 정도로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불법단체를 구성한 것도 아니고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국가 전복을 꾀한 것도 아니라는 분명한 선언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제자들에 대한 질문은 유대인들의 억지 주장일 뿐 로마인들이 걱정할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와 정치적인 나라를 혼동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제시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그 어떤 나라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나라는 무력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이기에,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나라입니다. 무력으로 세워지지 않으니, 그 나라를 원하는 이들은 설득의 방법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의 현존(삶의 모습)을 통해서 그 나라의 시민임을 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기쁨을 나눔으로 그 나라에 새로운 시민을 초대해야 합니다. 설득과 현존과 기쁨, 이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 나라에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합니다. 

 

한 편,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것처럼, 결국 예수님께서 정치범으로 해석되어 십자가형을 받았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설득하고 현존과 기쁨으로 전하는데,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또는 정말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수하게 내딛는 말과 행동이 행여 이상하게 해석되어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오해와 몰이해까지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분명한 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주님과 같은 일을 겪을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주제어는 “그의 교훈”입니다. 그의 말씀과 행동과 삶을 통해서 보여주신 가르침에 관해서 심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20절에서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은밀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8:16에서도 하나님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만, 누구를 통해서만, 누구의 해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그런 내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전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존 웨슬리 목사님은 성경의 진리를 가리켜 plain truth for the plain people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쉬운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일에 관한한 여러분의 자세는 늘 적극적이기 바랍니다. 

 

사제적 권위주의와 교리로 중무장한 그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쉬운 진리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제적 권위주의와 교리로 중무장한 사람들의 전형을 우리는 본문에서 봅니다. 바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혹시 교리를 말할 때는 늘 언제고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에 피치 못하게 교리를 말할 필요가 있다면, 그 목적은 우리의 신앙의 열정을 계속할 수 있도록,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교리는 바로 우리가 체험한 신앙을 확인하고 그것이 올바른 체험이라면 반복적으로 그 체험을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 교리를 통해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심미적인 차원에서 그 교리는 우리의 신앙을 아름답게 드러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주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며 누군가를 배제하려고 사용된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잘못된 교리를 따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는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입니다. 교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이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사람들의 설명이며, 사람들의 이해이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심문을 당하신 내용을 두 개의 주제어로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제자들에 대한 것과 그의 교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와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그분이 세우려고 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서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작년부터 계속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특별히 신앙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나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존재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정체성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의 정체성을 갖고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마주해야 합니다. 특히 제자의 삶은 순간순간 유혹하고 손짓하는 세속적인 삶의 방식과는 언제나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준비된 자세를 단단히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측할 수 없이 닥치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할까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예측하지 못한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가 취하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고 주님과 같은 마음과 말과 행동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되새겨야 합니다.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의 교훈을 따르는 그 정체성을 드러내며 각자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우리를 위해, 그 어떤 자리에도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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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1.2.20 19:39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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