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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예배 (김태완 목사)설교말씀 요약 박경옥 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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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증인이라"

눅 24:36-48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워주시는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24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세 가지 전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안식일이 지난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한 여자들이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했고,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가 무덤에 가서 빈 것을 확인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같은 날 늦은 오후에 글로바라는 이름의 제자와 다른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10킬로미터 쯤 떨어진 엠마오로 가는 중간에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동행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엠마오에 들어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빵을 축사하고 그들에게 떼어주자 그들의 눈에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바로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을 열한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눅 24:36-48)이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36절을 보면, 엠마오 두 제자와 열한 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19을 보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아 두었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부인했고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현장에서 모두 도망쳤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의 죽음은 그들이 원했던 결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죽임당하는 분은 그들이 원했던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는 죽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꿈과 희망, 미래도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셨지만 제자들은 깊은 좌절과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불안과 두려움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불안과 두려움으로 문을 굳게 닫아두었습니다.하지만 그렇게 문을 걸어 잠근다고 불안과 두려움이 없어질까요? 불안과 두려움은 문밖에 있지 않고, 문을 닫아 걸은 사람 속에 있는데 말입니다. 제자들은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숨었는데, 실상은 그들이 두려움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스스로를 갇힌 제자들의 방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단순히 인사의 의미를 넘어, 누가복음 2장 14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했던 천사들의 노래가 이뤄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의 탄생으로 시작된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완성시킨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날이라기보다, 우리 삶이 고난으로 피폐해지고, 삶이 주는 어려움으로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주님의 평화를 통해 희망을 품도록 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세상의 평화, 세상이 주는 평화를 거부하고 사망권세 이기고 사신 예수님의 평화,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다들 놀랬습니다. 37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을 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자 예수님은 왜 두려워하고 의심하느냐, 하시면서 39절과 4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셨다는 이 구절은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본문을 근거로 부활한 다음에도 이전에 손상되었던 신체의 흔적을 여전히 가질 것이고 땅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너무 지나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의하면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며, 신령하며 하늘에 속한 자,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살과 뼈가 있고, 손과 발에 있는 십자가의 흔적을 보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초대 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 특히 ‘가현설’이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영은 선하지만 그 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물질은 악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악한 육체에 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주장을 확대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지도 않았다”는 주장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육체의 껍데기, 즉 가면을 쓰고 죽은 척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쇼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육체성을 부인하면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의 부활은, 특별히 십자가의 상흔을 간직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은, 세상의 그 어떤 힘이나 권력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가둘 수 없다,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주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먹고 마시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부활을 찾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를 본 것으로 제자들의 의심은 걷혔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 더 분명한 증거를 제자들에게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이 둔한 그들이 예수님의 담대한 증인이 된 세 번째 이유입니다. 바로 그들은 살아있는 말씀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자주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제자들은 정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막 8:17; 요 8:43). 

 

예수님이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눅 18:31-34). 본문 44절에서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모든 책에서 나를 가리켜 한 말, 곧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에게 모두 이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이미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둔한 그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고자 그들의 마음을 열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마치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떡을 떼시고 축사하시는 예수님을 모습을 보고 그들이 눈이 열린 것처럼 말입니다. 

 

부활은 구약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실제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증인이 돼라”는 사명이었습니다(48절) 그들이 전달할 내용은 46-47절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의 고난과 부활, 죄 사함을 받는 회개, 즉 복음입니다.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로 우리의 삶의 태도가 변화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변화들이 증거들입니다. 헬라어로 증인은 “마르투스”입니다, 이 단어에서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martyr이 나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상황은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로마 총독과 군대, 헤롯 왕, 대사제와 율법학자들과 같이 어둠의 세력들이 현존했고, 강력한 힘으로 위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더 이상 두려움과 겁에 질려 떨던 비겁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열렸고, 그들의 마음은 주님의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부활의 소망, 생명을 살았던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위협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활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죽었던 몸이 소생하는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지적 동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의 인사를 통해 절망의 순간에서 소망하며, 주님의 평화를 누리며,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통해 일상 속에서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고, 변치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에 감격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오늘도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동참하는 것, 그것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복음으로 덧입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의 증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여전히 ‘코로나19’가 가져온 고난 속에 있지만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이야기가 전하는 핵심입니다. 우리 희망과 기도의 근거는 성경이 증언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불안과 두려움을 뚫고 일어나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할 영광의 그 날을 바라보며,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리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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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박창훈 2021.4.6 12:4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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