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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묵상 -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카우만 여사) 최종국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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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민수기13:33절 개역개정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6월 29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거인들을 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의심하는 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합니다. “우리는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31절). 하지만 믿는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30절),

거인들은 큰 어려움을 의미하는데, 어디서든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다닙니다. 그들은 우리 가정에 있고, 우리 교회, 우리의 사회생활, 심지어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이 거인들을 이기지 못하면 그들이 우리를 삼킬 것 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2절).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민 14:9). 이 말은 결국 이런 의미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거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이제 그들을 이기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다."

요컨대 승리하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길을 막고 나선 거인들의 밥이 되어 먹히고 말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졌던 것 같은 믿음의 마음" 으로(고후 4:13)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께서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 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따를 때에만 거인들을 만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거인들이 나타났으며, 다시 광야로 돌아갔을 때는 전혀 거인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에 들어온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갈등과 시련으로부터 그 사람을 지켜 주리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오히려 갈등과 투쟁을 불러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바울이 로마까지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으로 폭풍과 적대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길고도 험난한 투쟁을 치렀습니다. 맹렬한 바람과 독사를 만났고, 세상과 음부의 모든 권세자들과 맞닥뜨렸습니다. 게다가 파선까지 당해 익사 직전에 가까스로 헤엄쳐 멜리데 섬 해안에 닿았습니다.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께서 이러실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그분다운 모습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몸속에서 사는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곧바로 심각한 다툼과 갈등이 일었다고 말한 까닭도 바로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다툼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는 끈질긴 압박을 받았지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다툼을 이겨 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한 언어로 묘사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망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10).  참으로 질긴 투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이 주는 충격을 영어로 표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다섯 가지의 다른 이미지를 우리에게 차례로 제시합니다. 첫째, 그를 완벽하게 에워싸고 박해하지만 누르지 못하는 적대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바울을 누르지 못한 것은 하늘의  “경찰” 이 그를 보호하고, 그가 달아날 수 있을 만큼 넓게 길을 텄기 때문입니다. 영어 번역은 사방에서 심하게 박해를 당하나 눌리지 않고, 이지만, 원문의 문자적 의미는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해도 패하지 않고 입니다.

둘째, 적대자에 의해 길이 완전히 막히거나 방해를 받는 어떤 사람의 모습 입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버텨 냈습니다. 한 걸음 앞을 보기에 족한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셋째,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라는 이미지는 거룩한 보호자가 가까이 서 계시는 한편, 적대자는 바울의 턱밑까지 추격해 오는 모습입니다.

 그는 쫓기지만 혼자 버려지지 않습니다.

넷째 모습은 더욱 생생하고 극적입니다. 적대자는 바울을 불시에 덮쳐서 때려눕혔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타격이 아니므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맞아 넘어졌으나 파멸당하지 않았고, 혹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 “거꾸러뜨림을 당했으나 패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이자 다섯째 묘사로 바울은 생각을 한층 더 밀고 나가, 죽음 자체의 모습일 수도 있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데, “예수의 생명" 이 그를 도울 뿐 아니라 자신의 필생의 사역을 완성하기까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기때문입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거룩한 원리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투쟁 없이 모든 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툼이 일고 싸움이 치열해지면 그들은 낙심하여 굴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은 전혀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의 상점에는 싼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구속의 값을 치르시느라 모든 것을 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값이 비쌉니다. 고난의 시간, 고난의 환경은 우리 믿음의 학교이며 삶의 학교입니다. 우리가 미약한 인간의 힘을 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몸속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새 생명의 산고에 가까운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세의 삶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는 떨기에서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출 3:2, 공동번역) 광경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마귀들이 모세의 삶에 타오르는 불을 끄려고 끊임없이 그의 계획을 좌절시키 며 물을 퍼부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지키고 서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계속 기름을 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분명 고난이 있을 테지만 믿음으로 굳건히 서서 넘어 지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결코 패배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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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배상필 2022.6.29 22:38


    우리 주변에 있는 거인들이
    우리를 집어 삼킬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고난은 있겠지만, 결코 패배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 박창훈 2022.6.28 21:32

    "고난의 시간, 고난의 환경은 우리 믿음의 학교이며 삶의 학교입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배울 수 있고, 믿음으로 견고히 설 수 있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 최종국 2022.6.28 16:52

    원하지 않는 고통받는 상황과 환경 때문에 마음이 변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는지 깨닫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고 섬기고 사랑으로 축복해 주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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