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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과 여호수아서의 이해를 돕는 자료 배상필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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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nduk.or.kr/bbs/bbsView/32/5624488

여호수아서를 보면서 가나안 정복과 고대 이스라엘의 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찾아보다가

비교적 잘 정리가 된 자료가 있어서 올립니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관련해서 질문이 있으시면 최 목사님이 답을 주실 겁니다^^

댓글 질문도 환영합니다.

 

http://charger07.egloos.com/4123343

 

고대 이스라엘은 과연 종교꼴통이었나?

 

들어가며

대중적인 인식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소위 '종교 꼴통'이었다는 식의 서술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표현은 사실 모 위키에서 발견한 것인데, 고대 이스라엘을 고대 세계에서 독특하게 배타적인 종교를 가졌으며, 이 종교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사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고대 근동 사람들보다 유달리 종교적이었다는 의미를 배후에 깔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이러한 점은 우리가 고대 이스라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가 죄다 구약성서에서 나왔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런데, 여기서 고대사의 다른 모든 주제와 마찬가지로 사료의 문제를 지적해야만 한다. 구약성서는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목적으로 기록된 신학적 문서다. 당연당연히 성서 저자들의 관심은 종교적인 데 있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서술하고, 신학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해석했다. 그런데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성서를 읽으면서 "아 고대 이스라엘은 종교밖에 몰랐구나. 그것도 아주 배타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료의 오독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 구약 성서를 보면 고대 이스라엘이 야웨 신앙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고, 이 때문에 징벌을 받아서 외적의 압제에 시달리고, 회개해서 용서받아 압제에서 벗어나고, 벗어나니까 또 야웨 신앙을 버리는 패턴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이 식상할 정도로 똑같은 패턴을 보면서 '뭐지, 이 사람들은 뇌도 없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좀 더 심오하게(?) 생각해서 "음...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응?)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사료비판을 중시하는 역사학 방법론을 배웠다면, "이거 혹시 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성서학계에서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이름붙인 저작들의 대표적인 역사관이며,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고대 세계에서 매우 독특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실상은 어떠했을까?




기존 시각과 그 문제점

사실 고대 이스라엘 종교를 독특한 것으로 그리는 구약성서의 시각은 1960년대까지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져왔다. 물론 이때만 해도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던 이들은 압도적으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 독특함은 언제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즉, '이스라엘 종교는 가나안의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유일신인 야웨 하느님은 가나안의 잡스러운 신들(그 사람들이 보기에)과는 일절 관계가 없었다'가 이때까지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당연히, 가나안 종교에 대한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가령 고대 이스라엘사 연구에 있어서 전통적인 시각의 대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올브라이트는 가나안 종교를 '가증스럽다(abominable)'는 격한 단어로 표현한 바 있었다. Oldenburg 역시 가나안 '미신'의 '사악함'에 대해서 논한 바 있다.

당연히 지금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학자들에게는 사실상 구약성서 외에 접근할 텍스트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줄 필요는 있다. 본인의 종교적 신념에서 온 편견도 있었겠지만, 사료의 문제 때문에 이들은 가나안 종교에 대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색안경을 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새로운 연구의 발전과 동시에 크게 바뀌게 된다.




새로운 관점

변화의 계기는 무엇보다도 고고학에서 왔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행해진 발굴의 결과, 상당한 종교 텍스트들이 입수되었던 것이다. 이제 학자들은 구약성서를 통해서 본 가나안 종교가 아니라, 가나안 종교 그 자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르둑이나 바알과 같은 신들은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게 된다. 그 중에서도 우가릿의 발굴은 고대 근동 종교에 대한 인식을 가히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가나안 뿐만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도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고고학적 발굴로, 학자들은 구약성서 본문에 의지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겨놓은 실제 흔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더이상 예전처럼 구약성서 텍스트를 요약하는 것으로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조각상, 철기 2기

동시에 성서학의 발전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구약성서의 몇몇 특정한 책들에서는 야웨에게 순종하면 복을 받고 다른 신을 섬기면 벌을 받아서 멸망하는 식의 모티브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성서학자들은 이 책들에서 이런 모티브가 반복된다는 점에 집중하였고, 이것은 실제 사건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재구성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독일의 학자 마르틴 노트가 1943년에 정립한 "신명기계 역사서" 이론이다. 노트는 한 무명의 저자가 기원전 6세기 직후에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설명하기 위해 신명기, 여호수아, 열왕기를 모두 저술했다고 주장하였다.  즉, 노트의 해석에 따르면, 신명기 사가는 유다 왕국, 그리고 그에 앞선 북왕국의 멸망 이후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앞선 이스라엘 역사를 '불순종-징벌-회개-구원'의 프레임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이후 노트의 해석은, 두 가지 주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그 중 하나는 하버드 대학의 프랭크 M. 크로스의 해석이다. 크로스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몇몇 구절은, 그것이 노트가 주장한 BC 6세기보다 더 이른 시기, 즉 요시야 왕의 통치시기인 BC 7세기로 소급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다른 해석은 괴팅겐 대학의 루돌프 스멘트로부터 나왔다. 스멘트와 그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괴팅겐 학파'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연대가 노트와 마찬가지로 BC 6세기, 즉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 이후로 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노트와 달리 한 명의 무명 역사가가 아니라 여러 편집자들의 작품이라고 보았다.

이후의 연구사와 현재 학계의 주장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전반적으로 기존 학파들의 해석을 결합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즉, 현재로서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저자는 여럿이며 매우 다양한 시대적 층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두는 편이 적당할 것 같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일부 본문은 상당히 이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가능성도 보이며, 바빌론 유배 시기에 오래된 자료들과 새로운 자료들이 합쳐져, Thomas Röm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뉴 에디션'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어찌되었건 신명기계 역사서는 북왕국과 남왕국의 멸망과 유배를 설명하려는 분명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그 이전 시기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적 망탈리테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당연히 '야웨 숭배가 모두가 따라야 할 이상이며, 가나안 신의 숭배는 타락'이라는 관점을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 적용하는 것은 심각한 시대착오가 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과 가나안

구약 성서가 고대 이스라엘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바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에 들어온 신흥 집단이라는 것이며, 이들의 야웨 신앙은 가나안 종교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 연구 결과는 이 두가지를 모두 부정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행해진 대대적인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상당한 연구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특히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가 발원한 산악 지역에 대한 발굴은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이 지역의 거주지들에 대한 조사 결과는, 문화적, 종교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집단의 등장이 아니라 가나안 토착 집단들과의 강한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고고학과 본문비평을 결합한 최근 연구 결과,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가나안에서 기원했으며, 가나안 안에 존재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이것이 이집트 탈출 사건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 탈출 내러티브와 그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집단기억에 미친 영향도 한마디로 부정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 학자들은 이스라엘을 구성한 이들 중에 이집트 출신 하층민들이 있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구성원 다수는 가나안 토착민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며(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이스라엘이 성서 내러티브처럼 한 시조로부터 내려온 단일한 민족집단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집단이 대대적인 정복전쟁으로 가나안을 차지했다는 옛 해석은 현재 주류 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즉,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인과 근본적으로 같은 문화적 기반을 공유하는 고대 근동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가나안 상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성서는 왜 오랜 시간 함께 살았던 이스라엘과 가나안을 공존 불가능한, 전혀 다른 존재로 묘사했을까? Hervert Niehr는 성서에서 그리는 가나안인이,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안티테제로서 만들어진 허구라고 지적한다. 앞서 말했듯이 신명기계 역사서는 나라 멸망 이후의 반성이 중요한 모티브를 차지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 혹은 편집자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이스라엘 사람'이 해선 안되는 모든 것들(물론 후대 관점에서)을 모아서 허구적인 캐릭터인 가나안인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과장되고 허구적인 '타자화' 자체도, 자국인에게 저자들이 원하는 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고대 근동, 더 나아가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진 서술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도 이집트인과 비이집트인들을 날카롭게 대비시켜서 서술하였고, 고대 그리스의 '바르바로이' 서술도 그러하고, 로마인들의 정형화된 '페니키아인' 관념도 그러하다. 즉 어떤 면에서 봤을때, 성서 저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문화권의 서술 관습에 충실했을 뿐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다양성

그렇다면 가나안 종교와 비교해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실제로 어떠했을까? 흔히 가나안, 그리고 고대 근동 종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보아도 다신교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기에 대비되어 배타적인 일신교였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 있어서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 바로 1975-6년에 이루어지 네게브 사막의 쿤틸렛 아르주드 발굴과, 그에 앞서 1967년에 발굴되었지만, 쿤틸렛 아르주드 덕분에 해석이 가능하게 된 키르벳 엘-콤 비문의 발견이었다. 여기에는 '야웨와 그의 아셰라'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가나안 만신전에서 주신에 해당되는 엘의 아내 아셰라 여신을, 야웨의 아내 내지는 조력자로 묘사한 이 비문의 발견은 많은 논쟁을 유발하였고, 고대 이스라엘 종교가 생각보다 가나안 종교와 훨씬 더 밀접했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쿤틸렛 아르주드에서 발견된 항아리 조각

다신교는 근본적으로, 신들의 세상에도 일종의 룰이나 체계가 있으며, 각각의 신과 여신이 자기 영역이 있다는 사상이다. 물론 모든 신이 다 같지는 않고, 특정 지역에서는 그곳에 가장 절실한 영역을 관리하는 신이 우선적으로 숭배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면에서 봤을 때, 시리아-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날씨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여기에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리아-팔레스타인에서 이 날씨를 담당하는 신격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바알이었다. 여신 중에는 아셰라가 여기 해당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웨도 이 속성을 갖는다. 성서에서 바알이 야웨 신앙과 주로 대립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두 신앙의 영역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에서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비와 날씨 외에 생존에 중요한 것은 역시 전쟁이었는데, 야웨는 전쟁신의 성격도 강하게 띈다. 이 점은 구약성서에서 오래된 텍스트들로 여겨지는 시와 노래에서 잘 드러난다. 참고로, 바알도 전쟁신의 성격을 갖는다. 두 신의 영역은 상당히 많이 겹친다.

위와 같은 점을 감안하고 성서 텍스트를 살펴보면 의외로 일신교를 강조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령 십계명의 한 구절을 보자.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탈출기 20:2-3)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 구절은 결코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너(이스라엘)를 구해낸건 야웨 하느님이니, 너는 야웨만 섬기라는 뜻이 있을 뿐이다.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한 신만 집중해서 섬기는 것은 고대 근동의 다신교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를 일신교(monotheism)와 구분되는 일신숭배(monolatory)라고 한다. 그런데 위의 '야웨와 그의 아셰라' 비문 같은 고고학 발굴 성과를 보면 사실 엄격한 일신숭배도 아니었고, 고대 이스라엘은 적어도 초기에는 다신교적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성서 본문에도 드문드문 '신들의 천상 회의'라든지 다른 신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등 다신교적 모티브가 드러난다.


미카야가 말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가 보니 주님께서 어좌에 앉으시고 하늘의 온 군대가 그분의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누가 아합을 꾀어내어 그를 라못 길앗으로 올라가 쓰러지게 하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는데, 어떤 영이 주님 앞에 나서서 '제가 아합을 꾀어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2:18-21)
 

더 나아가 야웨 신앙 자체도 성서에 나타난 것처럼 체계적이고 일관된 것이 아니었음도 잘 드러난다. 아르주드 명문은 '사마리아의 야웨', '테이만의 야웨' 등의 표기를 보이고, 키르벳 비문은 '예루살렘의 하느님'이라는 표기를 나타낸다. 각 지역별로 야웨 신앙의 형태도 다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가리켜서 아예 'poly-yahwism'이라는 표현을 쓰는 학자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유명한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이 선언은 신이 하나임을 선언하는 일신교의 교리가 아니라, 이 지역 저 지역마다 다른 야웨 신앙이 아닌 단 하나의 야웨 신앙을 신명기 편집자가 선언하는 것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봤을때,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것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이를 가리켜 '(본래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이스라엘의 신앙이)가나안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이건 점잖게 표현한거고, 종교혼합주의에 빠졌다거나 순수하던 이스라엘이 타락했다는 표현을 쓰는 독실한 분들도 있다), 그렇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 자체가 가나안이라는 문화적 배경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것이다.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웨 이외의 신을 거리낌없이 섬기는 모습을 서술하며 비판하지만, 그것은 후대의 해석이고 당대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가 언제부터 본격적인 일신교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가는 역시 치열한 논쟁의 주제고, 아직까지 학자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초창기에 일신교가 아닐때에도 일신교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다만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독특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정 지역과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섬기던 주신이 점차 다른 신들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흡수하면서 더 일신교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비교적 흔한 현상이었다. 가나안 종교에서 주신이었던 엘이 바알과 같은 신들에게 밀려 점차 존재가 희미해지고, 이스라엘에서는 아예 야웨와 통합되버리는 현상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숭배되던(그러나 홀로 숭배되지는 않았던) 야웨가 점차, 예전 엘 신이 주재하던 신들의 회의의 상석에 앉게 되고, 마침내 유일신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고대 그리스만 해도, 올림포스 12신에 집중된 다신교로 출발했으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온 우주를 움직이는 단일한 원리인 '일자'라는 일신교와 유사한 이론이 제기되어 식자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어가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나오며

사실 앞서 설명했듯이, 이 주제는 논쟁이 치열하며 아직 학계에서 제대로 된 합의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주제다. 같은 구절과 모티브를 두고도 학자마다 일신교의 초창기 형태로 보는 이도 있고, 다신교의 흔적으로 보는 이도 있어서(위에 인용한 천상회의가 대표적이다) 뭐라고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비교적 분명한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주변 민족의 종교와 칼같이 구분되는 독특한 종교도, 유달리 배타적인 신앙도 아니었으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주변 민족들에 비해 독특한 소위 '꼴통 종교인'들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종교는 매우 전형적이고 평범한 고대 근동의 종교였다. 물론 그 안에 고유한 문화적 독특성은 있었다(신상을 금한다든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가나안 종교도 이집트 종교에 비하면 독특한 점이 있었고, 히타이트 종교와 아시리아 종교와 바빌로니아 종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도 나름대로 독특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가진 종교였으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 이웃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고대 근동 사회의 일원이었다.




참고문헌

John Barton (ed.) The Hebrew Bible: A Critical Companion (Princeton, 2016).
Francesca stavrakopoulou and John Barton (eds.) Religious Diversity in Ancient Israel and Judah (London, 2010).
위 두 선집에 실린 학자들의 논문들을 주로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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