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묵상 -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카우만 여사) | 최종국 | 2022-0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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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잔을 마심" 은 바다를 꾸짖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큰일이었습니다. 예언자와 사도들도 기적을 행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에 따른 고난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고난을 겪음은 여전히 가장 높은 형태의 믿음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신앙적 성취입니다. 빛나던 젊은 꿈이 모두 스러졌습니다. 도움의 손길 한 번 없이 언제나 힘겨운 일상의 짐을 지고 갑니다. 다른 이들을 돕고자, 사랑하는 이들을 조금 더 풍족하게 하고자 자신은 가난에 허덕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육신의 장애에 속박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떨어져 혼자서만 외로이 삶의 상처를 붙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의 훈련소를 다니며 능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높은 믿음이며 영적인 성공입니다. 위대한 믿음은 행함보다는 고난에서 드러납니다. 고난 받는 구주를 먼저 모셔야 연민하시는 하나님이 오십니다. 진정한 연민은 같은 고난을 겪어 남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고난 받는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없는데, 고난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남들을 연민하는 능력을 살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남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고난부터 겪어야 합니다. 남들을 구해 내려 한다면 기꺼이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며 삶의 크나큰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예수의 잔을 마심과 예수의 세례를 따름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웟의 시편 가운데 가장 위로가 되는 작품들은 그의 눈물겨운 고난의 인생에서 나왔습니다. 바울이 “육체에 가시” (고후 12:7)를 받지 아니하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 많은 서신들에 향기처럼 밴 부드러움과 친절을 지금처럼 많이 읽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렸다면, 현재 여러분을 심하게 압박하는 환경은 아버지의 손에 들린 완벽한 도구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연장을 들고 여러분을 영원에 맞는 모습으로 다듬어 내십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사용하시는 연장을밀쳐 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에서 행하시는 그분 작업의 결과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 이상하고 어렵다고 우리 생각하겠으나,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 그 뒤에 있습니다.
고난의 학교는 비범한 학자들을 배출합니다. |
댓글 3
박창훈 2022.7.22 16:54
"다른 이들을 돕고자, 사랑하는 이들을 조금 더 풍족하게 하고자 자신은 가난에 허덕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육신의 장애에 속박되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때로는 현재의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배상필 2022.7.20 22:53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높은 믿음이며 영적인 성공입니다.
위대한 믿음은 고난에서 드러납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고난의 잔이라면
기꺼이 감당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최종국 2022.7.18 16:22
바보 같이 나 자신을 소모하는 것을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지만, 떄로는 희생을 하며 누구간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때가 있습니다. 어깨위에 놓여진 무거운 짐들로 인해 힘들어하기 보다 그것으로 누군가 누리될 기쁨을 보며, 예수님처럼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