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묵상

  • 홈 >
  • 교육/훈련 >
  • 절기 묵상
절기 묵상
2020년 대림절 묵상 20 / 집의 빗장을 엽니다 김태완 2020-12-18
  • 추천 0
  • 댓글 2
  • 조회 407

http://unduk.or.kr/bbs/bbsView/43/5837334

1218(), '집의 빗장을 엽니다

 

찬송가 361기도하는 이 시간

 

기도

 

말씀 묵상 / ‘사도행전 1611~15

 

개역 개정 :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새번역 :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공동번역 개정 :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필립비로 갔다. 그 곳은 마케도니아의 첫 지방의 도시로서 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는 며칠 동안 이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안식일이 되어 우리는 성문 밖으로 나가 유다인의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리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티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수였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주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로의 말을 귀담아듣게 하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정말 저를 주님의 충실한 신도로 여기신다면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해설

초대교회가 가진 가장 놀라운 관계적 혁명은 당대의 신분제나 성별 차이를 뛰어넘는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노예 신분이어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말씀을 강론할 수 있었고, 여자여도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런 일을 놀라워하며 기뻐한 사람 중에 루디아가 생각났습니다. 루디아는 자주 장사였죠. 그녀의 고향인 두아디라는 예로부터 자주색 실 염색이 유명했습니다. 자주색 염료는 얻는 재료는 정말 귀했고, 공정은 매우 까다로워서 값이 매우 비쌌죠. 그래서 루디아의 집에는 부자와 귀족들이 많이 찾았을 겁니다. 그녀의 집의 문턱은 굉장히 높았을 겁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풍문을 들은 루디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유대교를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들의 율법을 묵상하고 규례를 따르며 경건한 삶을 살려고 했던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바울의 전도 여행 중인 바울을 통해 복음을 직접 듣게 됩니다. 구원의 기쁨에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루디아의 집은 그렇게 빌립보의 첫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집이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집의 문턱을 낮추고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절에도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손님이 입은 옷으로 구매력을 평가하곤 한다지요.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요. 행여 오늘날의 교회 역시 겉모습에 따라 사람을 등급 짓고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진정한 고귀함은 바로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정의와 겸손과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러했던 거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공동체를 꿈꾸며 고귀한 삶을 사는 대림절 기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찬양 주여 나를 평화로 도구로 써주소서

 

마침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로 세상의 명품이 아닌,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가 경계 지어온 빗장을 열고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추천

댓글 2

  • 배상필 2020.12.21 16:59

    평화의 도구로, 경계가 없는 세상을 위해 쓰임받게 하소서!

  • 박창훈 2020.12.18 12:35

    아멘!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0 대림절 묵상21 / 음악 묵상 3 [2] 김태완 2020.12.19 0 388
다음글 2020년 대림절 묵상 19 / 저의 재능을 선반에 두지 않겠어요 [2] 김태완 2020.12.17 0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