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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사순절 묵상 3 김태완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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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사순절 3

 

구원과 은혜는 하나님의 것

 

찬송가 85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기도

 

말씀 묵상 / “요나 45~11

 

개역개정 :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새번역 : 5 요나는 그 성읍에서 빠져 나와 그 성읍 동쪽으로 가서 머물렀다. 그는 거기에다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다. 그 성읍이 어찌 되는가를 볼 셈이었다. 6 주 하나님이 박 넝쿨을 마련하셨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자라올라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여, 그를 편안하게 해주셨다. 박 넝쿨 때문에 요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7 그러나 다음날 동이 틀 무렵, 하나님이 벌레를 한 마리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박 넝쿨을 쏠아 버리니, 그 식물이 시들고 말았다. 8 해가 뜨자, 하나님이 찌는 듯이 뜨거운 동풍을 마련하셨다.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그는 기력을 잃고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9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가 대답하였다.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11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공동번역 개정 : 5 요나는 시내를 빠져 나가 동쪽으로 가서 앉았다. 거기에 초막을 치고 그 그늘에 앉아 이 도시가 장차 어찌 되는가 볼 심산이었다. 6 그 때 하느님 야훼께서는 요나의 머리 위로 아주까리가 자라서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면하게 해주셨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7 이튿날 새벽에 하느님께서는 그 아주까리를 벌레가 쏠아 먹어 말라 죽게 하셨다. 8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불어오게 하셨다. 더욱이 해마저 내리쬐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요나는 죽고만 싶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투덜거렸다. 9 하느님께서 요나를 타이르셨다.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될 말이냐?" 요나가 대답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10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11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말씀 묵상]

 

요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야웨 하나님을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4:2)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뜻을 돌이켜 이스라엘을 다시 품으셨습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요나 역시 하나님을 반역했지만, 그가 돌이켜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요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에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말입니다. "주님,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죽는 것이 낫겠습니다.”(3) 니느웨 사람들이 재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요나가 찬양하던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다는 하나님의 속성이 이번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는 주제넘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대상과 그렇지 않을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맺는 관계에 따라 임의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밖으로 나가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 그 성읍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려고 합니다. 아마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켜 그 도시를 진멸하시기를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요나의 성마른 태도를 비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도시에 사는 12만여명을 언급하십니다. 많음을 뜻하는 상징적인 수이지요. 그들은 많지만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도덕적·종교적인 분별력이 (이스라엘보다 부족했기에 요나가 그들을 깔보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자비를 베푸셨습니다(7:49 참조) 우리는 요나를 보면서 분노에 사로잡혀 협소해진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에 우리는 너무나 옹졸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정직하고 깨끗한 영을 창조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가시투성이인 마음을 이고 지며 지옥을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 우리 안에 주님의 은혜를 담아주시고 그 은혜를 통해 우리가 넓어지고 깊어지게 하소서. 그 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간청을 들으시는 주님, 우리의 원수와도 같은 저들의 간청 역시 들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오늘의 기도

 

회개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회개의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잘못을 고백하고 돌이키려 애쓰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하는 우리의 몸과 영을 회복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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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배상필 2024.2.19 18:12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처럼 넓은 마음을 품게 하소서!

  • 최종국 2024.2.19 17:17

    은혜를 깨닫고 살아가게 하소서

  • 박창훈 2024.2.19 17:0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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